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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낮은 읊조림

읊조림(서른 아홉)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10. 15.
                         
어머니 돌아가신 후 발견한 선물

오랜 세월 동안 내 꿈을 버리지 못해 많이 힘들었다.
그것으로 인해 함께 사는 남편에게까지 은연중 미안한 마음이 들게 만들었다. 
내 스스로 그렇게 원한 적은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공부를 하고 살아야 행복한 여자를 
자신이 뒷받침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하루는 남편이 아주 심각한 얼굴을 하고 따지듯 말을 했다. 
"공부만 하고 살지, 왜 결혼을 했냐고?..."
또 이렇게 말했다.
"유학 가고 싶은 사람(나와 딸아이를 지칭하는 말)은 외국에 나가서 공부하고 
자신은 아들 녀석과 함께 국내에 남아 있을 테니 
시간이 흐른 후 누가 더 잘 되는지 확인해 보자고..."
그러면서 또 덧 부쳤다.
"분명, 떠나지 않고 남아있는 자신들이 더 성공할거라고..."

지나가다 이 글을 읽는 사람 중에 흥 하고 코웃음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마흔이 넘어선 나이에도 여전히 내 꿈을 버리지 못해 
아직도 어딘가에 있을 파랑새를 그리워하고 있는 나는 
지금 그 누군가에게 내가 어떤 사람이란 걸 들려주고 싶어서 
내 작은 뜨락에 긴 읊조림을 남기는 것이 아니다.
내 살아온 흔적 속에 나는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앞으로 내가 마주할 시간들 속에서 또 나는 어떤 자세로 살아갈 것인지를 
스스로 묻고 대답하는 여유를 가지고 싶을 뿐.  

몇 달 전, 남편이 마음에 각오를 했다는 표정을 하고  
십 년을 참기 힘들면 육 년을 기다려달라는 말을 했다.
십 년이라 함은 막내인 아들 녀석이 대학을 입학할 나이고 
육 년이라 함은 아들녀석이 고등학교에 갈 나이가 되니 
엄마인 내가 아이들에게 쏟는 시간과 정성을 조금 줄여도 
스스로 할 수 있는 나이니 
괜찮을 수도 있겠다는 남편의 설명이 덧 부쳐진 말을 듣는 순간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법학이나 경제학 공부를 해서 
법조인이 되거나 최고경영자가 되겠다는 꿈이 
정말이지 한순간에 별거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그런 생각이 든 배경에는 남편이 이야기 한 
먼 훗날의 내 나이를 실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 크게 작용했겠지만 
그보다 더 내 안에 깊게 뿌리내린 어머니라는 이름의 내 자리가 
나를 더 움직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여, 난 이제 많이 자유로워졌다. 
내가 이루고자 했던 꿈들을 이루지 못해 행복한 가운데도 늘 마음 한구석 
허기가 진 사람처럼 비어있음을 느끼곤 했던 것들로부터...
비록 내가 하고자 했던 꿈을 현실 속에서 이루어내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라는 직업을 가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나는 결코 내 젊은 날을 헛되게 보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머니의 집에서 가지고 온 선물(우등상과 임명장)을 보면서 
자식들에게 디딤돌이 되기를 기꺼이 마다하지 않은 
내 어머니의 마음을 기억해내며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정성과 보여 줄 수 있는 사랑을 
두 아이의 올바르고 건강한 성장을 위해 
기쁜 마음으로 씨를 뿌려 틔운 싹을 
정성껏 가꾸어 나가는 마음으로 지키고 보살펴 주리라 다짐해 본다. 
아직 어려서 많은 관문을 통과해야겠지만 
다행이 내 어린 두 아이는 내 어렸을 때 보다 
많은 분야에서 더 좋은 결과를 내고 있어 
나는 내가 만나지 못한 파랑새를 내 어린 두 아이에게서 보곤 한다.
이런 마음을 두고 사람들은 보상심리라 말하지만 
살아가는데 수학공식처럼 정답이 없다면 주어진 내 몫에 감사하며 
내 딛는 걸음이 
다른 사람에게 아픔이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열심히 전진하는 길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