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녀석과 일본 여행을 떠나기에 앞서 남아있는 남편과 딸아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점검하는 나에게 남편은 이번만은 다짐을 받아야겠다는 표정으로 몇 번이고 말했다. 굶지 않고 알아서 잘 먹을 테니 남은사람 생각해서 이것저것 할 생각도 말고 신경도 쓰지 말고 오로지 여행을 즐길 준비만 하라고 했다. 남편의 간곡한 부탁에 대답은 그렇게 하겠노라 했지만 떠나는 자 입장에서 그럴 수만은 없었다. 덕분에 37차 MARCO POLO 일본역사문화 탐방 팀과 합류하기로 한 대구시민회관으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그 순간까지 혼자 바빴다. 결혼한 여자에게 있어 혼자만의 여행이라든가 혹은 가족 중 누구라도 남는 이가 있는 상황에서의 여행이란 결코 떠나도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음을 이번 여행길에서도 또 느끼고야 말았다.
크루즈여행은 처음이라 그런지 한국국적의 호화여객선이라는 26,183TON(SUNNY호)급도 울렁이는 속을 쉬 가라앉히질 못했다. 이런 나에 비해 아들 녀석은 미리 멀미약을 귀 밑에 붙인 탓인지 그런대로 잘 버텨주었다. 배여행이라 썩 내켜하지 않는 아들에게 심심하지 않게 해주겠노라 약속을 했는데 아들 녀석이 좋아하는 게임방은 아직 오픈하지 않은 상태고 심심할 때 읽겠노라며 챙겼던 책도 마지막 짐정리하면서 빼고 왔으니 아이에게는 가도 가도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무료함과 싸워 이겨야 하는 첫 번째 과제가 되어버렸다. 그런 동안에도 시간은 흘러갔고 다음날 오전 배에서 내리기 전 일본 역사문화 탐방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특강은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특강을 맡으신 도형수 박사(계명문화대학 관광영어과 명예교수)님이 관광영어과라 다소 의아했지만 나눠준 특강자료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듣고는 여행사에서 그 분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 인정할 수 있었다. 그리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특강은 국화와 칼의 나라라는 일본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하는 계기를 만들었고 알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는 다시 기억하는 유익한 시간이 되었다.
예정보다 한 시간 이상 지체해서 도착한 곳은 일본 제2의 도시이자 상업의 도시로 알려진 오사카였다. 아들 녀석에게 멋진 것만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은 한국과 중국을 오고가는 배만 입항한다는 남항주변 시설을 접하는 순간 여지없이 무너지고 말았다. 남항의 첫 이미지는 협소했고 지저분했으며 어딘가 모르게 무질서하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로 실망스러웠다. 그 실망감은 잠깐 동안 우리나라가 일본에 이 정도 대접밖에 못 받나하는 우울한 생각마저 들게 했지만 어린 아들 녀석에게 이번 여행을 통해서 나라의 소중함과 나라 사랑하는 방법을 스스로 깨우치게 하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에 불을 지르는 명분을 만들어주었다.
2007년 07월 31일 - 喜也 李姬淑
'사과향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본역사문화 탐방 사흘째(2007년 8월 2일) - 이희숙 (0) | 2007.08.31 |
---|---|
일본역사문화 탐방 이틀째(2007년 8월 1일) - 이희숙 (0) | 2007.08.19 |
보고픔에 제 심장이 얼마나 빠르게 뛰고있는지... (0) | 2007.04.28 |
그녀가 사는 풍경 엿보기 (0) | 2007.04.22 |
언제나 처음 같은 마음으로 - 이희숙 (0) | 2007.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