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 아무도 없어요.
진심어린 위로가 필요한 내 이야기 들어줄...
무슨 일 있냐고요?
사실은 별일 아닐 수도 있는 일이에요.
그런데도 머릿속이 뒤죽박죽 엉망이에요.
그래서 화가 나느냐고요?
모르겠어요.
그냥 머릿속이 백지처럼 아무 생각이 안나요.
사실은 지금도 그렇지만
어제 두 아이 때문에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참 난감했거든요.
자식 자랑하는 부모가 팔불출 중 제일이라지만
두 아이 때문에 웃어야 했던 일이 많았기에
정말이지 그동안 나처럼 행복한 여자도 드물다 싶었는데...
어제 학교에서 돌아온 아들 녀석과 마주한 이십 여분의 시간은
엄마노릇 사표 쓸 수 있다면 단 몇 십분이라도 좋으니 안하고 싶을 만큼
요동치는 감정을 다스리기 무척이나 힘들었어요.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야기 하죠.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고요.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학창시절 성적이 좋으면
그만큼 기회가 많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하고 싶은 이야기의 본론에 들어가자면
올해 고등학교 1학년인 딸은 이번 중간고사에서 반에서 1등을 해
자식이지만 절로 고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런데 중학교 1학년인 아들 녀석은
아들 녀석을 아는 이라면 그 누구도 상상 못할 성적을 받고도
반성은커녕 실망을 시킨 원인에 대해서도 당당하기까지 해
얼마나 기가 막히던지 말문을 닫고 싶을 만큼 충격이었어요.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라고 했던가요?
초등 6년 동안 전부는 아니지만 반에서 1등은 거의 아들 차지였고
교육청에서 인정한 수학영재로 주목 받던 아이였는데...
중학교 들어가서 친 전국 일제고사는 또 어떻고요.
상위 2%내에 들어 일학년 전체에서 4등까지 주는
성적우수자 매달도 받아 잘하겠지 하는 믿음이 있었는데
충격이라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말이 없네요.
믿기지 않는 성적을 받고도 하고 싶은 말 다하는 아이를 보면서
꿈을 꾸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어쩌면 난 아이의 하락한 성적에 화가 난 게 아닌지도 몰라요.
맞아요. 사실 난 아이의 철없는 행동에 대해 더 화가 났어요.
7월에 있을 기말고사를 쳐 봐야겠지만
하락한 성적이야 마음만 달리 먹으면
언제고 제 위치를 찾겠지 하는 믿음은 이 순간에도 있으니 괜찮아요.
하지만 그동안 엄마아빠 때문에 억지로 공부했다는 둥
공부 잘해봐야 이익도 별로 없는 것 같고
자꾸만 어려운 공부만 더 해야 하니 공부하기도 싫고
그래서 대충 시험을 쳤다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정전된 것 마냥 깜깜한 게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생각하면 할수록 실망스럽더라고요.
속에 있는 말을 다 꺼내고 있는지 살필 겨를도 없이
마음가는대로 써 내려가다 보니
이제야 아들 녀석을 위해 뭘 해야 하는지 알 것 같아요.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사춘기가 일찍 와서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폭풍처럼 다가온 사춘기가 별 탈 없이 하루빨리 조용히 사라지기만을 기다리며
아이의 입장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해야겠지요.
그렇다 해도 솔직히 힘이 빠지네요.
공부가 행복의 성적순은 아니라지만
지금 마음 같아선 스스로 기회를 버리려고 한 아들 녀석이
한동안 이전처럼 사랑스럽지 않을 것 같아요.
남편말대로 아이가 놓쳐 버린 공부에 대한 흥미나
공부는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게 우선순위겠죠.
그러기 위해서는 아이의 마음이 이전처럼 부드러워 질 수 있게
내 마음부터 활짝 열어젖혀 요구보다는 기다려주고
꾸중보다는 격려를 아끼지 않는 엄마가 되도록 노력해야겠죠.
오늘 스승의 날이라고 점심 먹고 일찍 집에 온다는 아들 녀석에게
어제는 엄마가 미처 네 마음을 살피지 못해 미안했노라고
먼저 다가가 말해야겠어요.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언제까지나 널 믿는다는 말도 빠트릴 수 없겠죠.
아, 이제 마음이 홀가분해졌어요.
엄마인 나보다 훌쩍 더 자란 아들 녀석이 너무 너무 보고파졌어요.
이게 엄마 마음인가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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