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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낮은 읊조림

읊조림(일백 열여덟)

by 시인촌 2008. 5. 22.

세상과 사람, 삶에 대한 생각이 스스로에게 고마워 할 만큼 긍정적이라

마흔 중반을 살아오는 동안 지나온 어떤 일로 인해서

새롭게 펼쳐질 앞날에 불필요한 무게를 더 한 적은 없었지만

나도 감정에 흔들릴 줄 아는 사람인지라

소소한 것 때문에 잠시잠깐 기분 나빠지기도 하고

필요 이상으로 걱정을 하곤 했던 적은 더러 있었다.

  

요 며칠 생각하면 할수록 속상한 일이 있었다.

4월 중 부도가 난 서울 소재 캘리포니아와우 피트니스 센터(압구정, 강남, 명동)와는 다르다며 안심하라던

‘대구 캘리포니아와우’ 가 5월 10자로 일방적으로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좋은 환경에서 운동하고자 한 욕심 외에는 아무 잘못도 없는데

그동안 운동도 하지 못하고 선불 지급한 입회비도 돌려받지 못해

마음 한구석 개운하지가 않았는데 오늘은 밀린 숙제를 다 했을 때의 느낌처럼 기분이 좋다.

  

캘리 사건으로 인해 피해를 본 4만 명 이상의 회원 중에

나처럼 별 손해 없이 잘 해결된 경우도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

내 경우를 보면 운동 시작한지 그리 오래지 않았고

기간도 짧은 1년 이내로 한 점,

무엇보다 모든 회원이 제각각인 입회비를 감안한다면

현실적인 거래조건을 체결한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어쨌거나 신용카드 할부금 취소 통보(내용 확인 증명서)도 처음 작성해보고

좋은 일이 아닌 일로 우체국에서 특급우편 발송을 해 시간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분명 손해는 입었지만

무엇을 하든 간에 할부를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깨고 적지 않은 돈이 한꺼번에 인출되는 것 보다

6개월 무이자로 나눠 내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그렇게 처리했는데 그 결정이 나를 웃게 할 줄이야...

이미 지급한 1개월 이외는 거래통장에서 출금이 안 되니 다행임에 틀림이 없다.

이번 일로 인해 표현은 안 했지만 나의 여가생활에 든든한 후원자 역할을 한 남편에게 미안했는데 생각만으로도 좋다.

  

지난밤, 고등학교 1학년인 딸아이가 내민 성적표에

반 37명 중 1등, 전체 560명 중 10등 이라고 표시되어 있었다.

딸아이의 노력이 보람으로 확인된 성적표를 이미 보았는데도

기분 좋은 미소가 새록새록 피어오른다.

캘리 사건이 해결된 것 보다 더 신나는 딸아이의 성적표,

엄마라서 행복한 순간이다.

  

딩동, 도착한 문자메시지가 나른한 오후시간을 경쾌한 다장조로 이끈다.

집에서 쉬고 있는 며칠 동안 전화로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주었더니

끝까지 잘 들어주어서 고맙다며 더 잘 살겠다는 메시지가 도착한 것이다.

짧은 몇 줄의 글귀에서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르고 마음이 느껴진다.

때때로 내 자신이 누군가에게 작지만 위로가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다행이다 싶을 때가 있다.

지금이 바로 그런 순간이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는데 필요한 시간과 위로가 될 수 있도록 관심을 기울이는 시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짧을지도 모른다.

 

살면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감동이 되고 희망이 되고 위로가 되어야 한다.

언젠가는 내 자신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순간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아니어도 줄 수 있고 할 수 있을 때가 행복하다는 사실을

우리 모두는 이미 알고 있다.

알면서도 살다 보니 잊기도 하고 더러는 모른 체 하면서

세월에 나이테 하나씩을 보탠다.

 

세상은 마음먹기 나름이고

받아들이는 대로 결실을 맺는다고 했던가?

반쯤 열린 마음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어설프게 열린 귀와 살포시 뜬 눈을 키우니

어느 것 하나 아름답고 귀하지 않은 것 없고 고맙지 않은 것이 없다.

이래저래 오늘은 기분 좋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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