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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 이희숙

by 시인촌 2010. 6. 24.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다가 ‘부모는 멀리 보라하고 학부모는 앞만 보라하고 부모는 함께 가라하고 학부모는 앞서 가라하고 부모는 꿈꾸라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라는 가슴을 두드리는 공익광고를 보았습니다. 고3수험생인 딸아이와 중3아들을 둔 나는 그 순간 내 자신이 두 아이에게 학부모인지 부모인지에 대해서 고민해 볼 필요가 있음을 느꼈습니다.

 

주중 수면 시간이 다섯 시간도 되지 못하는 고3수험생인 딸아이를 보면 측은한 마음에 주말은 건강을 생각해서라도 7시간 이상은 자야한다고 권유를 합니다. 그런 내가 주말에 예외 없이 컴퓨터 앞에 앉아 음악을 듣거나 보고 싶은 드라마 재방송을 보느라 두 세 시간 여유를 부리는 딸을 보면 다른 아이들은 각자의 꿈을 향해 열심히 공부하고 있을 텐데 하는 걱정을 합니다. 이렇듯 나는 부모의 마음과 학부모의 마음 사이에서 자주 서성거립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아나운서가 꿈이었던 딸아이는 오랜 시간을 변함없이 연세대 언론영상학부를 희망하며 꿈을 키워왔습니다. 꿈을 향해 노력하는 아이를 지켜보면서 그동안은 너라면 충분히 네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며 격려했는데 고3이라는 현실 앞에서 부모의 마음보다 학부모의 마음이 앞서는 걸 종종 느낍니다.

 

언젠가부터 기회라는 이름하에 서울대도 아이의 꿈에 포함되기를 원했습니다. 말이 좋아 기회지 공부해야 할 과목이 늘어난 아이 입장에서 보면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탐2과목을 치는 대부분의 대학과 달리 국사포함 사탐4과목과 제2외국어와 논술까지 공부해야하니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 생각하지 않은 결과를 초래할까 내심 걱정도 되지만 자꾸만 부모의 마음보다 학부모의 마음 쪽으로 기우는 걸 어쩌지 못합니다. 뒤늦은 선택이 아이의 인생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는데 딸아이의 말이 가슴에 파문을 일으킵니다.

“엄마, 가고 싶은 연세대언론영상학부에 합격하면 정말 기뻐서 눈물 날 것 같지만 서울대에 합격하면 그냥 그럴 것 같아......”

마음 같아서는 아이가 그토록 듣고 싶어 하는

“그래 네 뜻대로 해. 네가 원하는 학교에만 치중하면 공부하는 과목이 줄어서 분명히 합격할거야.

걱정 말고 지금처럼 네 꿈을 위해 최선을 다해 줘.” 라고 말하고 싶지만 생각 따로 행동 따로 입니다.

 

어제 학교에서 ‘대학 진학을 위한 맞춤 전략’이라는 주제아래 특강이 있었습니다. 특강이 끝난 후 담임선생님과의 면담이 있었는데 학교에서는 서울대를 기대한다고 하셨습니다. 아이가 뭘 원하는지를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나는 제1지망은 연세대언론영상학부라고 분명히 말하면서도 서울대도 아이의 도전에 포함시켰다는 말도 빠트리지 않았습니다. 이렇듯 나는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부모의 마음과 욕심이 앞서는 학부모의 마음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했습니다.

 

솔직히 부모와 학부모의 마음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들이 어찌 고3수험생을 둔 입장뿐이겠습니까? 자녀를 둔 이 땅에 사는 수많은 부모들은 아이가 말을 배우고 글을 알기 시작한 나이부터 부모와 학부모의 마음 사이에서 수없이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을 반복합니다. 오늘 나는 자녀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면 더 나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대로 노력을 하는 이 땅에 사는 위대한 부모들에게 자녀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게 무엇이고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는지, 대화를 통해 아이의 꿈과 행복에 대해 진정성 있는 고민을 주고받은 적 있는지, 아이의 적성과 성취도는 무시한 채 부모라는 이름으로 많은 것을 강요한 적은 없는지 묻고 싶어집니다.

 

부모와 학부모 사이에서 고민하는 분들에게 놀고 싶어 하는 어린 자녀에게는 친구가 되어 주고, 공부하느라 힘든 자녀에게는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고,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자녀에게는 가슴으로 느끼는 마음을 입 밖으로 표현해 주고 가슴 벅차도록 안아 줄 수 있는, 세상 모든 아이들이 바라는 건강하고 멋진 부모의 모습을 자녀와 마주하는 매순간은 아니어도 노력하고 있음을 우리들 아이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루에 한번은 부모의 마음이 되어 자녀의 얼굴에 웃음꽃을 피워주세요. 라고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사랑한다, 고맙다, 널 믿는다, 너라면 할 수 있어......

긍정적인 한마디 말이 자녀의 성장에 얼마나 큰 에너지가 되고 거름이 되는지를 아는 당신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

 

 

 

 

2010년 06월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