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다가다 아는 사이인 그녀에 대해서 아는 거라곤 분이라는 이름과 친정이 멀리 열대 아메리카라는 사실 외에 나이가 몇인지, 결혼은 했는지, 이사는 언제 왔는지 알지 못한다. 지루하던 장마가 꼬리 감추며 사라지던 날, 가끔 들르는 미장원 골목 어귀에서 분이를 만났다. 말도 없고 낯빛마저 어두워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볼까 싶었지만 어쩌다 마주쳐도 처음 대하는 사람마냥 다문 입술은 열릴 줄 모르기에 천성이 그런가보다 생각했다. 분이에 대한 관심이 무디어져 갈 무렵, 수줍어서 대답도 잘 못하던 그녀가 바람이 났는지 해지기 무섭게 어디론가 바삐 간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녀를 보았다는 사람들은 말을 맞춘 듯 딴 사람인양 곱다고도 하고 동네 소식통인 서울댁은 화장기 없던 얼굴에 분을 발라서인지 선녀가 따로 없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무성한 소문은 여름 내내 사람들 사이에서 맴돌아 끝내 그녀가 멀리 이사를 갔다는 이야기까지 들려왔다. 열대야로 잠을 설친 이른 새벽, 휴가를 떠나는지 까만 가방을 메고 지나가는 그녀와 마주쳤다. 보고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예뻤다. 철부지 소녀의 볼이 이처럼 붉을까 싶을 정도로, 수줍은 새악시 입술이 저토록 진할까 싶을 정도로, 미치도록 뜨겁던 나의 여름도 전염이 되는지 분이처럼 수줍게 익어가고 있었다.
2010년 07월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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