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가을 각중에 찾아온 불청객은
부실한 대접에도 구석진 방에 앉아 말이 없다
밀어내려는 자와 눌러앉으려는 자 사이에
싸움이 길어질수록 구경꾼의 주머니는 두둑하다
씹는 자유를 저당 잡힌 턱은
먹는 즐거움마저 압류당한 채 눈치만 살피고
싸움의 최대수혜자인 구경꾼은 스트레스를 줄이고
멍 때리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는 처방전을 내놓지만
어쩐지 나의 봄은 눈치 없는 애인처럼 머뭇거리고
완치 불가 판정을 받은 턱관절 디스크는
대놓고 거드름을 피운다
이럴 어째, 진작 어르고 달래서 구워삶아볼걸
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나 볼걸
이 일을 어쩐다 정말 어쩐다
지금이라도 보채지 말고 종종 멍 때리는 연습을 하면
못 이기는 척 아니 온 듯 돌아가려나
그러면 나는 막 미치도록 좋아서
아담한 카페 하나 열어야지
작명소에 맡기지 않고 철학적으로 지어야지
2017년 03월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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