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상한 여자입니다
십이월 첫날
어쩌자는 작정도 없이
마음 찢고 나온 생각 따라
별안간 제주에서 살아보기를 하러 온
나는 이상한 여자입니다
대문 없는 단독주택을 빌려
큰 그림을 그리러 온
날마다 제주를 통째로 훔치는 상상을 하지만
한 번도 훔친 적 없는
아무려면 어때요
살 오른 애기동백이 밤마다 무도회를 열고
상큼하고 달콤한 말투를 가진 감귤이 온 동네를 기웃거려도
이상할 것 없는 즐거운 하례마을인걸요
날 것 같은 말투를 바당같이 알아듣는 돌과
우리말을 몬딱 외국어로 알아듣는 나무 앞에서는
쉿 목소리를 낮춰요
단박에 나무인 걸 들킬지도 모르니까요
아무려면 어때요
아침이면 한걸음에 달려온 한라산이
공천포를 밀어 올린 해와 입맞춤 하고
잠들지 못한 저녁이면
더듬더듬 전하는 바람의 안부로 잠이 드는
여기는 서귀포 하례마을인걸요
2018년 03월 - 喜也 李姬淑
주)
바당(바다의 제주도 사투리)
몬딱(모두의 제주도 사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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