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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간이역

누가 그 많은 상처를 잉태했을까? - 희야 이희숙

by 시인촌 2024. 6. 27.

단단하던 사이가 무너지는 지점은

별거 아닌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돌보지 않은 상처가 덧나서 곪는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길 때 틈은 점점 사이를 벌린다

믿음을 쌓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신 그해 크리스마스이브날

번지수를 잘못 찾은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건너갈 때마다 몸집을 불려

잔잔한 일상의 행복을 무너트리고 웃음을 앗아갔다

 

그 일 후 오래도록 불면에 시달린 나는

살기 위해 살아내기 위해

끄적이고 끄적이고 또 끄적였다

썼다, 지우고 다시 썼다 지웠던 말 그리고 마음

그때는 정말 몰랐다

위로받지 못한 채 서둘러 봉인한 감정이

돌보지 못한 상처가 이리도 깊고 아플 줄

 

누가 그 많은 상처를 잉태했을까?

 

 

 

2000-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