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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당근과 채찍 - 이희숙

by 시인촌 2005. 4. 29.

어떤 일에 있어서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결과가 기대에 못 미치면 과정이 아무리 성실했다하더라도 그 성실함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는 말을 채 자라지 않은 두 아이에게 스스럼없이 건 내곤 하는 나는 시험이나 기타 중요한 행사에서 일등을 하거나 두각을 나타내면 크게 기뻐하며 칭찬하고 그와 반대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무엇이 문제였나에 대해서 냉정히 분석하며 약속을 지키지 못한 상황에 대해 일정기간 컴퓨터 시간과 용돈을 줄이는 것 등의 제재를 가해 아이들 스스로 노력하지 않으면 손해라는 생각을 들게끔 한다.

 

가끔 신문이나 텔레비전에 나오는 소위 성공했다고 말하는 부류의 사람들 이야기와 국내 일류대학을 나와 취직도 논스톱으로 잘한 친척들과 지기들 이야기를 들으면 학원 한두 군데 다니고도 별로 쉴 시간이 없는 두 아이에게 이 학원에서 저 학원으로 더 이상 혹사시킬 수 없다는 생각에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든 흔들리지 않고 내 방식대로 교육시키리라 다짐했던 마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내 아이가 지금처럼 느긋하게 있어도 좋은가 하는 조바심마저 들어 여느 엄마들과 마찬가지로 즉석에서 만들어진 따끈따끈한 잔소리를 예고 없이 늘어놓는다.

 

"서울강남에 있는 아이들은 어떻게 공부하고 누구는 치열하게 공부해서 외국에 교환학생으로 갈 준비한다는데 제발 자신에게 자존심을 가지고 공부해, 세상에 그저 얻어지는 공짜는 없다..."

 

정말이지 한세상 폼 나게 잘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냐마는 싱싱한 나무처럼 자라나는 두 아이에게 거는 기대치를 낮추기란 생각처럼 쉽지 않다. 이런 나를 보고 남편은 욕심부리지 말라고 충고하지만 타고난 천성이 게으르거나 느슨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이고 보면 할 수 있는 사람이 노력하지 않는 걸 언제까지나 느긋하게 바라보는 스타일은 못 되는 편이다.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딸아이는 곧잘 하면서도 가끔가다가 
"엄마가 한번 해보세요. 전과목만점 먹는 게 말처럼 쉬운지...

다른 엄마들은 반에서 5등만 해도 잘했다고 칭찬을 한다던데... "따지듯 말을 한다.
그런 딸아이가 자신감이 되살아났는지 이번 시험에서 결과가 좋으면 뭘 해주겠냐고 은근히 나와 협상을 하러든다.
"넌 뭘 원하는데?"
"전교일등하면 미국에 있는 디즈니랜드로 엄마랑 여행가고 싶어요."
"좋아. 올 만점을 먹든 전교일등을 하든 아니면 일 학년 전체에서 일등을 하면 약속을 지키지."
"그럼 노력해볼게요."

 

약속을 했다고 다 지켜진다면 얼마나 좋겠냐마는 텔레비전도 보고 싶고 미인은 잠꾸러기라며 하루에 여덟시간은 자야된다는 딸아이는 시험 날짜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약속을 지켜 원하는 미국여행을 하고 싶지만 쉬운 일이 아님을 느꼈는지 어제는 은근슬쩍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솔직히 어려울 것 같다며 반에서 일등 하면 안돼요. 하고 슬그머니 협상조건을 낮추고 싶어한다.

 

계절이 무르익은 봄으로 접어드니 두 아이의 중간고사 시험 일이 며칠 남지 않았다. 이번에도 나는 당근과 채찍이라는 미끼를 두 아이에게 던졌다. 매번 내가 당근과 채찍이라는 미끼를 사용해 두 아이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만드는 건 아니지만 확실한 미끼가 두 아이로 하여금 하고 싶다는, 해야만 한다는 의식을 스스로 느끼게 할 수만 있다면 매부 좋고 누이 좋고 식의 결론을 이끌어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며칠 전에는 당근과 채찍이라는 미끼를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키가 큰 남편과 달리 아담사이즈인 내 키를 두 아이가 혹여 라도 닮으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요즘 아이들은 잘 먹고 잘 자면 클 때 되면 큰다는 남편 말에도 아랑곳 않고 키 크고 싶다면 키 크는 약을 사 줄 테니 대신 먹기 싫은 채소도 함께 먹어야만 효과를 보니 먹어야 한다는 약속을 받아내고는 정가가 삼십 오만원 하는 키 크는 약을 작년 봄에 이어 올 봄에도 두 아이에게 안겨다 주었다. 믿거나 말거나 하겠지만 커야 할 시기에 키 크는 약을 함께 복용해서인지 많은 효과를 본 두 아이는 키가 크고 싶다는 욕심에 그렇게도 싫어하는 채소도 조금 더 먹으려고 애쓰는 걸 보면 내 작전은 나름대로 성공을 한 셈이 되었다.

 

당근과 채찍이라는 미끼를 이용해 두 아이의 학습효과나 실생활에서 고쳐야 할 부분들을 조율하는데 이용하고 있지만 언제까지 두 아이에게 먹혀 들어갈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인성교육이 우선되어야한다는 걸 알고 있고 인정하면서도 자녀들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부모가 되리라는 성급한 마음 때문에 오늘 아침 식탁에서 두 아이에게 아직은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들을 해 버리고 말았다.  스스로 느끼고 기억하고 행동하는 자만이 성공된 미래를 보장받는다는 말과 꿈은 사라져서도 사라지지도 않는다는 말을...

 

사방 천지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는 요즘, 나를 나답게 하고 향기롭게 하는 일이야 많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두 아이에게 있어 좋은 부모로서 내 역할을 잘 해내고 있을 때가 아닌가 싶다. 요 며칠 시험을 앞둔 두 아이 공부 점검하느라 내 자신이 공부하는 학생인지 가르치는 선생님인지 분간하기조차 쉽지 않은 바쁜 나날들 속에 살고 있지만 부모의 자리가 얼마나 나를 겸손하게 하고 성숙하게 하는지를 새삼 느끼게 되었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해하고 웃고 떠들다 보면 정말이지 그동안 공부해라, 공부해라를 세뇌교육 시키듯 주기적으로 입에 달고 산 내 모습이 얼마나 부끄럽고 미안한지...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어쩌면 가장 이른 시간인지도 모른다는 말은 비단 어떤 행동에 국한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얘들아, 엄마는 말이지. 사기를 꺾는 말을 하기보다는 너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라는 말로 꿈과 용기를 북돋아 주고 싶은데 너희들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스스로에게 멋진 사람이 될 준비를 차근차근 잘 해나가기를 바래......’ 

 

 

 


2005년 4월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