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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자유에 관한 단상(斷想) - 이희숙

by 시인촌 2005. 7. 14.

국어사전에서 ‘자유’라는 낱말을 찾아보면
자유란,
1. 남에게 얽매이거나 구속받거나 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는 일 
2. 법률이 정한 범위 안에서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는 행위. 라고 명시되어 있다.

 

루소는 자유는 인간이 자연상태에서 지니는 속성이며
오직 개인에게만 속한다고 보았고
홉스는 자유[自由, freedom]를 "장애가 없는 상태"로 정의했다.
그리고 요시모토 바난, 야마다 에이미와 함께
일본의 3대 여류작가로 불리고 있는 에쿠니 가오리는
자신의 저서 ‘울 준비는 되어 있다’에
"자유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고독한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위에 나타난 몇 가지 자유에 대한 타인의 생각을 읽어 내리면서
내가 꿈꾸는 자유는 "장애가 없는 상태"인 ‘홉스’에 더 가깝다는 걸 알았다.
그 생각을 하자 마음속에서 불현듯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 며칠 두 아이 기말고사라고 알게 모르게 긴장한 마음을
내려놓아야 할 때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어느 순간 내 의지로써 결정했다는 점에서는 자유로 해석할 수 있지만
나는 절대 자유롭지만은 않았다고 여겨지는 것들로...
 
젊은 날 내가 꿈꾸었던 자유는
내 안에서 솟구치는 열망에서 그치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
체루 탄과 데모로 얼룩진 시대상황의 영향도 있었지만
선택 또는 결단의 자유라고 불리는 철학에서의 자유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아감에 가장 기본적인 조건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어떠한 것으로부터도 구속받지 않는다는
정치학에서의 자유에 더 민감했던 것 같다.
그런 시각은 내 신상에 아무런 변화를 주지 않았지만
정신적으로는 자유가 제한되거나 침해되거나 하면
인간은 결코 행복한 상태에 있다고 할 수가 없다는 사실에는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을 보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나는 단 한 번도 내 속에서 들끓는 열망들을 
행동으로 쏟아내지 않았다.
마치 한발 물러서서 바라보는 구경꾼처럼.

 

본능과 욕망을 느끼며 살아가는 인간은
문명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가
아주 먼 옛날부터 자유를 원했다.
밥보다는 자유를 달라고 절규할 만큼.
그런데 요즘은 그 자유가 너무도 변질하고 있다.
타인의 의식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게 마치 자유인양.
하지만 그건 결코 자유의 참, 모습이 아니다.
진정한 자유는 적어도 많은 사람이 인정하고 공감하는
대중성을 띄고 있어야 하며 시대를 뛰어넘어서도 이해돼야 한다.

 

여기서 나는 한 번쯤 처음부터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과 돌아온 싱글이 된 사람들을
자유라는 개념 속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한다.
일로 바쁘거나 그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결혼생활을 유지하면서
수많은 이름에 어울리는 역할을 하느라 끝도 없이 동분서주하는 사람보다
비교적 시간적인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들은
결혼한 사람 중에서 특히 시간적인 제약을 많이 받는 사람들 측면에서 보면
온전히 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자신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사는 그들의 상황이
세상의 자유를 다 만끽하고 사는 것 마냥 생각될 때도 있지만
사실 자유라는 것은 혼자라서 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산다거나
혼자가 아니어서 더 많이 자유를 억압당하고 산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만큼 자유는 타인으로부터 쟁취하는 게 아니라
자신 안에서 스스로 생성되는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나는 그 누군가의 아름다운 관심에서 출발하는
적당한 구속 속에 숨 쉬는 자유가 좋다.
내 의지로써 선택할 땐 자유로 해석할 수 있다는
철학적 의미의 자유를 굳이 들먹이지 않아도.

 

이즈음에서 나는 자유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고독한 상태를 뜻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던
 ‘에쿠니 가오리’의 생각 속에
내 생각을 밀어 넣어야 할 차례라는 것을 기억해낸다.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듯 바닥이 보이는 밑바닥까지 내려갔다면
그다음은 내려앉은 그 바닥에서 탈출을 시도해야 한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자유란,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고독한 상태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을 수 있는 다음 단계가 분명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본다.
지켜보고 인정해주는 관계 속에서 성장하는 참 자유가
인간을 더 풍요롭게 한다는 생각은
흘러간 세월만큼이나 많이 변해버린 내 사고 앞에서도 당당하다.
종종 낯선 걸음을 떼야 하는 선택 혹은 결단의 자유 앞에서 머뭇거리는 순간에도.

 

 

 

 

2005년 07월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