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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낮은 읊조림

읊조림(일흔) - 이희숙

by 시인촌 2005. 9. 6.

사람은 누구나 비밀의 화원 하나쯤은 가지고 있고 
꼭꼭 숨기고 싶은 마음과 
풀어내고 싶은 마음사이에서 진통을 겪는다고 봐요.
어쩌면 내 글 쓰기의 시작도 이런 심리전에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겠어요.
이유야 어쨌거나 글 쓰기는 아주 매력적인 작업이에요. 
고여 있는 것들을 털어 냄으로서 매순간은 아니어도 
진정 내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깨닫는 순간과도 마주치고 
낯선 듯 낯설지 않은 내 속의 또 다른 나와 만나는 기회를 가지기도 하니까요.

누구는 더 맑은 영혼에 닿는 법을 스스로 깨우치기 위해 
글을 쓴다고도 말할 수 있겠지만 
솔직히 나는 먼 훗날 내 자신을 돌아볼 때 
참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흔적을 찾기 위해서 
틈틈이 기록해둔다고 봐야 더 정직한 표현일 거예요. 
그런데 공개된 공간에서 글을 쓴다는 게 
점점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만큼 가슴 저 아래에서 솟아오르는 생각들을 
느끼는 그대로 써 내려가지 못한다는 말이 되겠지만
기록하는 일만은 멈출 수가 없어요. 

내 마음 속 들여다보듯 그대로의 나를 읽어 내리는 이가 
이 세상에 단 한 명도 없을지라도  
내가 쓴 글이 이미 내 손을 떠나 
읽는 이의 가슴온도에 맞게 채색된다하더라도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모든 과정을 통해서 
내가 피하고자 하는 나와 껴안고 싶은 내가 만나 새로운 나로 탄생되는
그 순간을 놓치고 싶지는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