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과향기

딸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1. 25.

2001년 09월 06일 목요일, 오후 5시 14분 00초 
안녕~~~~~~~~~ 페리요정...^^* 
요즘 가을운동회 연습하느라고 많이 힘들지? 
학교 돌아오면서 엄마 목소리 듣고 싶어 거의 매일이다시피 전화하는 너 
엄마도 어느새 네가 올 시간이면 
우리 예쁘고 똑똑한 페리요정의 맑고 밝은 목소리를 들을 생각에 
수시로 시계를 쳐다보고 전화기에 신경을 쓰곤 해. 
언젠가 네가 엄마에게 이런 말 한 적이 있지. 
엄마는 너무 까다롭다고.
그말을 듣는 순간 속으로 많이 부끄러웠단다. 
엄마의 욕심이 너에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것 같아서 말이야. 
그래도 엄마는 이렇게 말하고 싶단다. 
지금은 엄마가 조금 까다롭게 느껴질지도 모르지만, 모두가 널 위해서란 걸.
집에서 너와 동생에게 가르치는 교육을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는 것도 
엄마의 욕심 때문만은 아니란 걸 알기 때문이란다. 
성공한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이루어지는 게 아니란 걸 
어린 네게 서서히 가르치고 싶은 엄마의 마음을 아직은 잘 이해 못 하겠지만 
지금으로부터 사 오 년 뒤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가 되면 
아마도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읽어 내릴 수 있을 거야. 
평소 걸음걸이 하나부터 식사하는 것까지 까다롭게 요구하는 이유를.
어찌 보면 아직 어린 너로서는 품위니 품격이니 하는 말을 스스럼없이 하는 엄마가 
여느 집 엄마와 달라 까다롭게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엄마는 이렇게 생각한단다. 
아빠와 엄마 그리고 너와 동생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끼친다면 네가 되고 싶은 꿈들을 
충분히 이룰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 있단다. 
지금껏 잘해왔듯이 맑고 밝은 생각으로 계속 너다운 행동을 해 나간다면 
멋진 숙녀로 자라 네가 가고 싶은 유학도 가고 
마침내 네 꿈대로 우리나라 최고의 아나운서가 될 수 있을 거야. 
엄마는 믿어. 
넌 내 사랑스러운 딸이니까... 
귀엽고 사랑스러운 페리요정 널 사랑한다. 
공주병에 걸린 너를 닮은 엄마공주가...^^* 
************************************************************************ 

2001년 09월 11일 화요일, 오전 11시 45분 46초 
안녕! 페리요정. 
오늘 엄마와 네가 처음으로 만난 날이구나. 
진심으로 생일 축하해. 
9년 전 네가 이 세상에 태어난 그날을 아빠와 엄마는 자주 이야기하곤 한단다. 
널 신생아실에서 처음 만난 순간 엄마는 너무 행복해서 기쁨의 눈물을 흘렸지. 
세상에 어쩜 저렇게 예쁜 아기가 내 품속에서 태어났을까 하고 말이야. 
하얀 피부와 까만 눈썹 이목구비가 뚜렷한 네 모습에 반한 아빠는 
매우 좋아서 여기저기 전화를 해댔지. 
"우리 아기 보러오세요. 얼마나 예쁜지 몰라요." 라고 연신 싱글벙글 이었지. 
그런 아빠를 보고 할머니와 외할머니는 참 이상하다 하셨지. 
왜냐하면 갓난아기는 모두 다 빨갛고 모습 또한 뚜렷하지 않다는 생각에서였지. 
하지만 넌 분명히 달랐어. 
병원에서도 이렇게 예쁜 아기는 처음이라고 의사선생님과 간호사언니들 
그리고 다른 산모가족들과 널 보러 온 사람들 모두 
한결같이 네 사랑스러운 모습에 반했지. 
넌 그렇게 아빠 엄마와 아주 행복하게 만났단다. 
지금 이 편지를 쓰는 엄마의 마음은 너무 행복하단다. 
오늘 아침 생일 밥 잘 먹고 사물놀이 연습하러 간다고 
같은 반 친구들보다 학교에 먼저 가야 하는 널 보면서 
참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에 흐뭇한 마음이었단다. 
며칠 전 저녁 식탁에서 아빠가 널 칭찬한 일 기억하니? 
이번 학기에는 반장선거에 나가지 않고 
대신 반을 위해서 봉사 잘하는 친구를 추천했다는 네 말을 듣고 
아빠는 무척 좋아하셨지. 
늘 공부보다는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아빠 
엄마는 아빠의 그런 모습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또한 존경한단다. 
사랑하는 아이야! 
오늘 아침 혜성반 선생님께서 
네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한다고 대신 전해달라고 하셨단다. 
오늘 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네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올 때 
어떤 즐거움을 줄까 엄마는 지금 고민 중이란다. 
맛있는 음식 이외의 즐거움을 준비하러 가기 위해서 
엄마는 조금 있다가 외출을 할 거란다. 
꽃집에도 들르고 그다음은 비밀.
기대해도 좋을 거야. 
이 편지 나중에 읽게 되겠지만 
너랑 마주 보고 이야기한 것 같아 엄마는 아주 행복했단다. 
사랑한다. 
건강하고 예쁘고 또한 똑똑하면서도 착한 너를...... 
네가 있어서 행복한 엄마가 사랑스런 너의 생일을 축하하면서...^^* 
***********************************************************************

2002년 06월 26일 수요일, 낮 3시 53분 23초
엄마야.
오늘은 우리 예쁜 딸에게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머금고 
아이스크림처럼 달콤한 목소리로 사랑한다는 말을 건내고 싶다.
신애야! 사랑해.
언제까지고 엄마는 신애엄마여서 행복할거야.
널 낳아서 초등학교 4학년이 된 지금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여전히 엄마는 신애 엄마여서 
그리고 재석이 엄마여서 누구보다도 행복할 거야.
그저께 비 온 후라 그런지 오늘따라 햇살이 더 밝고 깨끗한 것 같아.
옥상에 빨래를 널다가 문득 이런 생각을 했지.
어쩜 햇살도 바람과 비에 샤워할지도 모른다는.
조금은 엉뚱한 생각이지만 
동화 나라에는 햇살도 바람도 모두 목욕을 할 수 있을 거야. 
동화는 현실세계에서는 불가능한 것들도 가능하게 해 주는 꿈이 있으니까
엄마도 때때로 꿈을 꾼단다.
피터팬처럼 언제나 늙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우리가족 모두 지금처럼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하고 싶은 일, 되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사람들.
현실 속에서는 쉽지 않아도 
꿈에서는 뭐든지 엄마의 소원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라면서 
아주 가끔 빨강 머리 앤처럼 상상을 하곤 해.
어느 날은 상상을 너무 오래 해서 실제상황이 아닌가하고 착각할 때도 있지만
엄마도 때로는 너희 못지않게 되고 싶은 꿈도 많고 
가고 싶은 곳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단다.
내 사랑스러운 아이야!
근래 들어 엄마가 아프다는 이유로 내일 치는 시험공부 
더 많이 신경 써주지 못한 것 같아 정말 미안하다.
하지만 넌 잘할 수 있을 거야.
전과목 모두 백 점을 바라는 엄마에게 넌 그랬지.
쉬운 건 아니라고.
알아, 하지만 넌 지금껏 잘 해왔잖아.
다른 아이들보다 공부하는 시간은 적어도 머리가 좋고 집중력이 뛰어나니까
넌 언제나 1등이잖아.
엄마 마음은 그래.
너희 학교가 아니라 대구 전체 더 나아가 우리나라 또래 아이들을 상대로 
네 꿈을 당당히 겨루었으면 해.
신애야!
오늘 엄마가 네게 들려줄 말은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말이야.
이 말뜻의 깊이를 제대로 알려면 좀 더 자라야겠지만 
아무튼 노력한 만큼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는 것을 알고
남은 시간 열심히 공부해서 내일 좋은 결과 있기를 바란다.
파이팅!...
추신: 이 편지 읽어도 오늘은 답장하지 않아도 됨.
엄마 마음만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너에게 편지를 보낸다.
사랑한다.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