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비가 와서 참 좋았어.
어쩜 그렇게 매번 기분이 좋을 수 있는지 모를 일이라고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내가 배시시 웃으며 꼬리표를 다네.
그건 말이야.
낙천적인 성격 탓도 있지만 솔직히 날씨와 계절 중 특별히 싫은 게 없더라.
뭐랄까?
날씨는 날씨대로 계절은 계절대로
저마다 다른 매력과 저마다 다른 향기가 있다는 걸 진작에 알았기에
날씨와 계절을 싫어하기는커녕 그날 상황에 따라서
오히려 좋아하고 즐긴다고 표현해야 옳은 말 일거야.
가끔 순간적인 느낌에 취해 우울할 때도 있지만 내 손길이 필요한 일이 있다든지
내 주변에 우리 가족 중 누구라도 가까이 있으면 우울했던 마음은
신기하리만큼 꼬리를 감춰 한 동안 찾지 않아도 좋을 깊은 곳에 꽁꽁 숨어버리지.
그렇게 해 달라고 특별히 부탁 한 적도 없는데 참 다행이야.
어제 수영장 가는 길목에서 본 풍경은 한마디로 환상이었어.
산허리 여기저기 피어있는 나리꽃과 갓 스물을 넘긴 수줍은 처녀의 젖꼭지처럼
빨갛게 익은 복분자 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 우는 산딸기,
빗물에 이슬처럼 대롱대롱 맺힌 풀잎과 나무
그 사이로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받쳐 들고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 사람들...
정겨운 풍경 너머로 다가오는 대덕문화전당과 남부도서관
도심 한 가운데 이런 풍경이 있다는 건 생각만 해도 기분 좋은 일인데
주말을 제외한 거의 매일을 이 아름다운 풍경들과 눈 마주치며 인사를 하곤 하니까
바라보는 것들 앞에 서면 문득 먹지 않아도 기분 좋은 포만감을 느껴.
내 옆을 지나는 그 누군가에게 나눠주어도 바닥이 드러날 것 같지 않은...
오늘은 내 영혼을 살찌우게 하는 아름다운 풍경들 중
나를 살아있게 하고 꿈꾸게 하는 일상을 이야기하려고 해.
6월 30일 전과목 친 시험 평균 성적이 99점으로
○○ 초등학교 전교 1등을 한 5학년인 딸아이와
누나보다는 약간 떨어졌지만 평균 98점으로 반에서 공동 1등 한 2학년인 아들녀석.
아직은 내 관심이 많이 필요한 초등학생이지만
두 아이에게 고맙다는 말과 함께 평소 최고의 칭찬으로 해주는 말인
역시 너희들은 ‘내 딸, 내 아들이야.’ 하고 기도하듯 조용히 되 내이고 싶어.
제 자식 예쁘고 귀하지 않은 부모가 이 세상에 어디 있겠느냐고 흉봐도 좋아
오늘만큼은 아니 이 시간만큼은 내 독백에 타인의 시선을 가두고 싶지 않아.
오늘 전교 1등 했다고 같은 반 친구가 우리 집으로 인터뷰를 하러 왔더라.
내일 학교에서 말하기. 듣기 시간에 발표할 내용이라며
딸아이가 공부를 잘 하는 비결과 학교에 대한 학급에 대한 생각, 그밖에 부모님 말씀 등...
인터뷰를 하러 온 아이에게 이렇게 말했지.
"공부 잘한다고 다 똑똑한 건 아니란다. 똑똑하다는 건 말이야.
자신이 생각하는 것들을 분명하게 표현 할 줄 아는 것과
자신이 한 행동에 책임 질 줄 아는,
한마디로 똑똑하다는 건 지혜롭다는 말에 가깝다고......"
누군가는 초등학교 때 1등 하는 건 별거 아니라고 말들 하겠지만
어느 날 갑자기 잘한다는 거나 좋아지는 건 별로 없다고 생각해.
시냇물이 모여 강물이 되고 그 강물이 모여 바다 되듯
지식도 모이고 모여서 더 깊어진다는 걸 알아.
지금 내가 이런 이야기하는 건 오만해서도 아니고 철이 없어서도 아냐.
솔직히 특별한 케이스인 학습지진아가 아닌
보통수준에 있는 아이들이 몇 개의 학원을 다니고도
기대이하의 결과에 힘들어한다는 부모님과 아이들을 볼 때
순전히 그 아이책임만은 아니라고 생각해.
지금 나는 부모의 책임도 분명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야.
어떤 측면이든 아이가 공부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지 못했거나
아니면 부모가 아이의 스승이 되어보려고 노력하지 않았거나
아무튼 요즘 우리 아이들의 꿈이 몇 년째 확고하게 굳어 가는 걸 지켜보며
고맙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
더불어 어느 순간 내가 우리 아이들에게 있어서
정신적인 스승노릇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날이 빨리 다가오지는 않을까 하는
은근한 걱정 아닌 고민도 가끔 해.
왜냐하면 우리 아이들은 엄마는 뭐든지 척척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진하기 그지없는 아직은 마냥 곱기만 한 어린아이들이니까.
나는 말이지.
공부든 그 이외의 것이든 간에 억지로 시키고 싶지는 않아.
이랬으면 좋겠는데 하고 의견을 내지만 선택은 아이들 몫이라고 생각해.
그렇다고 해서 전적으로 아이들 판단에 맡긴다든지
방치한다 싶을 정도로 무관심하다는 이야기는 아냐.
조언이 필요한 나이기에 이끌어주는 건 부모로서의 당연한 권리이자 의무라고 생각하지만
한 발 물러서서 바라봐 주고 기다려 주는 것도 필요하다는 뭐 그런 말이지.
내가 아이들에게 평소 공부에 대해서 하나 분명하게 지키고 싶어하는 건
궁금한 게 있으면 가능한 한 스스로 찾아보게 하는 거야.
아이들이 내 도움을 필요로 할 때에는 기꺼이 도움을 주어야 하고...
며칠 전 책을 좋아하는 딸아이에게 서서히 수준을 높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에
생텍쥐페리의 " 어린왕자 " 라는 책을 사서는
읽어 라는 말 대신 아이가 발견하고 가까이 할 수 있는 곳에 놔두었어.
그랬더니 어느 날 그 책을 발견하고는 틈틈이 읽곤 하대. 재미있다는 말과 함께.
누군가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 보다 스스로 하는 것에 더 많은 능률이 오른다는 말
공부에서도 독서하는 것에서도 예외는 아니라는 말 우리 아이들을 통해서 실감하는 중이야.
나는 말이야.
아이들에게 까다롭되 여유가 있는 엄마이고 싶고
다소 칭찬에 인색한 듯 해 보이지만 꿈을 키워주는 말을 자주 해 줌으로서
아이가 간접적으로 엄마가 해 주는 칭찬의 목소리를 느낄 수 있게 하는 엄마이고 싶어.
강요가 아닌 바로 보는 눈과 제대로 들을 줄 아는 귀와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는 입을 스스로 느끼고 생각하는 바대로 채워갈 수 있게 해주어
어릴 때부터 자신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참으로 많다는 것과
자신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도 사랑할 줄 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고 싶고
더 나아가 올바른 국가관과 민족의식도 심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해.
평소 공부보다는 먼저 인간이 되라는 아빠의 가르침으로
우리 집 아이들은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는 아직 미미한 단계인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시험치는 전날 밤 11시가 넘도록 배짱 좋게 텔레비전을 볼 수가 없지.
공부보다는 인간이기를 먼저 강조하는 훌륭한 아빠를 둔 아이들이지만
나는 여전히 마음 한구석 욕심이 있음을 느껴.
이런 나를 읽어 내리는 남편은 가끔 매서운 지적을 하곤 해.
순리대로 행할 것과 비교하지 말 것, 조바심 내지 말 것 등
그럴 때면 참 많이 미안해.
머리로는 분명 이해하면서도 간혹 가슴으로는 조바심내기도 하고 비교도 하고 그러니까...
오늘 하늘 올려다 본 적 있니?
비온 그 다음날이라 그런지 너무 맑고 고와서 어지러울 지경이더라.
그 맑은 하늘아래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어 빨래 줄에 나란히 널어놓은
크고 작은 옷들이 형형색색 깃발처럼 펄럭이는 모습 어쩜 그리도 상큼하니.
우리 네 식구 살아가는 이야기가 널어놓은 빨래 감에서도 들리는 것 같았지 뭐야.
아삭아삭 단내 나는 과일처럼 맛있는 소리, 정겨워서 소곤소곤 입맞추는 소리.
나는 하루를 일년 사는 느낌으로 살아.
무슨 말이냐고 묻고 싶니?
마음이 불편하거나 몸이 아파 꼼짝하기 싫은 날에는
계단을 덜 오르락내리락 하기도 하지만
수영장 계단을 오르내리며 밟는 약 150개의 계단을 합쳐
난 매일 눈뜨고 눈감는 시간까지 1층에서 4층까지 오르락내리락
365개가 훨씬 넘는 계단을 오르고 내리면서 내 하루가 일년과 같다는 생각을 해.
한 계단 밟을 때 욕심이 사라지기를...
또 한 계단 내려 올 때 무탈 하기를...
하나를 버리면 또 하나를 채우는 일상이지만
요즘 들어 산다는 게 참으로 고마울 따름이야.
이른 아침 우리 집 정원에서 느끼는 풀 냄새와 꽃향기
수시로 날아드는 새들과 나비, 잠자리, 벌, 심지어 줄지어 어디론가 소풍가는 개미떼...
고사리 같은 두 아이가 치는 피아노소리
사색의 방 베란다를 통해 눈 안으로 쏙 들어오는 하늘과 우방타워,
그 아래 그림처럼 들어앉은 문화예술회관.
매일 내 눈 가득 보이는 풍경들에게 난 서서히 익어 가는 법을 배우곤 해.
햇살이 좋아도, 비가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습관처럼,
비가 내리는 날이나 밤 깊은 시간에는 더 길고 깊게...
소소한 일상에서 이렇듯 수시로 행복을 느낄 수 있는 건
내 마음이 넓어서도 아니고 내 마음이 깊어서도 아니라는 걸 알아.
행복은 나만 편하고 좋다고 해서 느끼는 건 아닌 것 같아.
나를 둘러싼 내 가족과 가까운 친척
더 나아가 매일 하루에 한 두 번 이상 얼굴 마주치는 이웃들
모두 모두가 특별한 질병이나 아픔 없이 평온할 때
내 행복도 덩달아 몇 배로 진하게 느낀다는 걸...
지금 나는 나를 지탱하는 모든 것들에게 감사하고 싶어.
그 중에서도 특히 내가 엄마라는, 아내라는 자리를 감사하게 느낄 수 있게
잔잔한 언어와 행동으로 나를 감동시키는 가족들에게.
2003년 07월 2일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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