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인 이상 우리는 모두 한두 개쯤 알게 모르게 중독에 가까운 것들과 아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중독은 어쩌면 우리 생활 깊숙한 곳곳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필요악일지도 모른다. 적당하면 이로움이 되고 지나치면 화가 되는 것들 중독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일, 사랑, 커피, 알코올, 인터넷 중독 등. 어디 이것뿐일까? 따지고 보면 곳곳에 널려 있는 것이 위험한 중증의 중독과 관계된 일이 참으로 많음을 우리는 쉽게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하나의 굳어진 습관도 넓은 의미로 보면 습관성 중독일 수도 있다는 사실, 마치 몸에 밴 오래된 인처럼 혹은 굳은살이 박인 것처럼.
한 세상 살면서 수많은 사람이 버릴 수 없는, 아니 버리고 싶지 않은 중독 중에 가장 으뜸이 무엇일까? 내 짧은 소견으로는 단연 ‘사랑중독’ 이라고 말하고 싶다. 사랑중독, 각각 다른 환경과 삶의 틀에서 이 십몇 년을 혹은 그 이상 또는 그 이하의 시간을 다른 공간에서 자라온 남녀가 어느 날 문득 만나서 서로 사랑한다는 감정을 느끼게 되고 그 과정에서 "난 당신 없으면 못 살 것 같아요." 혹은 "당신은 내 인생의 전부예요." 라고 말하기도 한다. 물론 그 순간은 모두 다 간절한 바람이고 진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한다고 해서 다 결혼을 하는 것이 아니고 보니 이런저런 이유로 헤어짐의 순간을 피할 수는 없다. 물론 사랑한다고 해서 다 결혼을 해야 행복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남녀가 사랑하면 늘 함께 하고 싶어지는 욕심이 생긴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자연히 결혼이라는 새로운 선택을 한다.
사랑은 환희요 행복인 동시에 그만큼의 절망이요 불행이다. 이 모든 것을 머리로 생각하는 차디찬 이성의 편에서 생각하면 사랑도 고통보다는 기쁨이 훨씬 더 클 것이다. 하지만 가슴이 지배하는 감정보다는 늘 사랑에 있어서 뒤떨어지기 마련이다. 아슬아슬한 로맨스도 없고 그 누군가를 죽도록 사랑해서 미칠 것 같은 애틋함도 없다. 그러니 자연 이성으로 하는 사랑은 밋밋하고 재미가 없고 또한 긴장감도 없다. 그 반대로 어느 날 교통사고처럼 다가오는 사랑은 늘 흥분되고 초조하고 숨 막히는 긴장감이 있다. 기다리는 그 순간마저도 입안이 바싹바싹 타는 목마름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누구나 한 번쯤은 자신에게도 날카로운 이성이 빚어내는 사랑이 아닌 뜨거운 가슴으로 하는 진실한 사랑을 절실히 원한다. 원한다고 해서 모두가 그런 뜨거운 사랑을 하는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오로지 그대라는 이름만 들어도 입가에 연신 웃음이 묻어나던 연인들도 점점 만나는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서로 더 많이 알아감으로써 오히려 실망하고 마음에 차지 않는 부분 때문에 서로 한때 열렬히 사랑했던 순간들을 서서히 퇴색시키는 이들도 많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은 설렘 그 자체였고 행복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이럴 수는 없다 라는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른 채 서로에게 있어서 잊혀 가는 존재로 남는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랑중독 말기에 오는 쓸쓸함이다. 그런 사랑중독은 모두 피하고 싶을 것이다. 그래도 어찌하랴. 사랑은 예고 없이 찾아드는 교통사고와 같은 것임을.
문득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 .’ 라는 광고 문구가 생각난다. 어쩜 사랑은 움직이는 화살과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정확하게 과녁을 겨누고 화살을 쏘아도 자신이 원하는 거리에서 어딘가 늘 비켜가기만 하는 안타까움. 그렇다. 사랑은 영원불변하기를 바라지만 분명 움직이는 것이다.
여름, 모두 낭만이 어쩌고 정열이 어쩌고 떠들어대며 바다로 산으로 계곡으로 휴가를 떠날 것이다. 각자 다른 일탈을 꿈꾸며. 정열의 여름, 삼바 춤이 그리운 계절 여름, 불처럼 뜨겁고 폭포처럼 차가운 사랑을 찾아 잠시 떠나자. 가족과 함께라도 좋고 혼자라도 좋다. 여름이 우리를 삼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여름을 태우자. 태양이 이글거리는 바다에서, 녹음이 우거진 산 숲에서 사랑중독 ‘Oh No!’라고 큰소리치며.
2001년 어느 여름날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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