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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정월대보름에 얽힌 짧은 이야기

by 시인촌 2004. 2. 5.

 

옛날 우리 조상들은 설날부터 정월 대보름까지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함께 먹고 마시며 긴 겨울을 훈훈한 인심이 감도는 흥겨움으로 이끌어 낼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요즘처럼 겨울에도 뭔가 할 일이 많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던 시절이라 마땅히 해야 할 농사일도 없었지만 정월 한 달은 이래저래 아랫마을 윗마을 할 것 없이 흥에 겨워 있었다. 어린 시절 이씨 집성촌 작은 시골 마을에도 어김없이 겨울은 왔다. 사랑채 아궁이에 활활 타오르던 장작불이 서서히 재로 변하는 시간이면 소죽 끓인 냄새와 불길이 잦아진 재에 묻어 두었던 군고구마와 군밤 익는 냄새가 한 겨울 저녁을 더욱 더 정감 있는 풍경으로 만들었다.

 

1970년대, 정월 대보름날이면 떠오르는 달을 제일 먼저 봐야 그해 소원을 성취할 수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한 이야기 때문에 저녁도 먹지 않고 콩이랑 땅콩 등 볶아 먹을 수 있는 종류를 바지 주머니에 볼록하게 넣어 가지고 언니, 오빠, 친구들과 함께 오르기 쉬운 마을 뒷산으로 올라갔다. 남자아이들이 달집태우기에 사용 할 솔가지와 마른 솔잎을 주워 모으는 동안 여자아이들은 평평하고 넓적한 돌 위에 집에서 준비 해 온 볶을 것들을 얹어 놓고 마른 나뭇잎과 뿌리째 섞은 나무 둥치를 주워 와서는 불을 지폈다. 달구어진 돌 위에 있는 콩들이 익으며 하나 둘 바깥으로 톡톡 튀듯 달아날 즈음 누군가 먼저 야! 달이다 하고 소리치면 서로 먼저 보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흥분 속에서도 남들이 내 소원을 알아차릴까 염려되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아이들 틈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거리를 두고 달님에게 기도를 했다. 똑똑한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이름 석 자를 꼭 남기게 해 달라고, 시골 아이치고는 꽤 당당하고 야무진 꿈이었지만 그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아주 오랫동안 버릴 수 없었다.

 

♧ 결혼을 하고 처음으로 맞이한 정월대보름 전날, 동갑내기 신랑을 끌고 가까운 시장으로 가서 고사리, 콩나물, 시금치, 피마자나물, 취나물, 참나물 등 여러 가지 나물 종류와 밤, 호두, 땅콩도 사고 청어에 참조기, 두부, 무등 정월대보름날 먹을 음식재료들을 잔뜩 사들고 왔다. 이걸 어떻게 다 먹느냐고 의아해 하는 신랑에게 대보름날 음식은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어야 복이 온다면서 부럼은 정월 대보름날 새벽에 하나하나씩 깨물어서 먹으면 일 년 내내 부스럼과 종기가 안 나고 이빨이 튼튼해진다며 선생님 마냥 신랑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했다. 조상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미풍양속을 지키고 싶어 하는 내가 찰밥에 갖가지 나물을 얹어 맛있게 아침밥을 먹고 귀 밝기 술까지 몇 모금 마신 것과 달리 얼큰한 음식을 좋아하는 신랑은 평소 즐겨 먹지 않는 음식을 먹느라고 곤욕이었을 법도한데 그날 저녁 맞벌이를 하는 내가 바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감주(식혜)까지 한 것이 고마웠는지 먼저 퇴근해서 빨래에 청소까지 말끔히 해두었다.

 

2001년 올해도 예외 없이 정월대보름날 먹을 음식을 준비하느라고 어제 저녁 오래도록 다듬고 삶고 볶고 하느라고 밤이 깊어 가는 줄도 모르고 오랜 시간 주방싱크대에 부착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따라 부르며 즐거운 마음으로 서 있었다. 산다는 것은 작은 정성이 모이고 모여서 큰 감동이 된다는 것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 바로 행복의 근원이라는 것을 기쁘게 느끼며......

 

 


2001년 02월 06일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