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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향기

머나먼 나라로 띄우는 편지Ⅱ

by 시인촌 2005. 11. 9.

그리운 어머니,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어머니 당신을 가슴으로는 느끼고 있으면서도
이렇게 어머니 당신을 온전히 그리워하며
편지 한 줄 쓸 시간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어머니,
일년이라는 세월이 왜 그리도 빨리 흘러가는지요.
어머니 떠나신 그 가을이 벌써 찾아왔구나 싶었는데
어느새 벌써 음력으로 어제가 입동이었답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찬 기운이 느껴집니다.
유난히 추위를 잘 타는 제 몸이 바쁜 생활에 견디지 못하고
며칠 째 감기와의 전쟁을 치르고 있습니다.
그래도 마음만은 어제도 오늘도 맑습니다.


요즘 이곳은 눈을 들면 각종 나무들의 향연으로
아름답다 못해 눈이 부시기까지 합니다.
어제는 신랑이 집 곳곳에 심어져 있는 나무에서 떨어지는 나뭇잎을
쓸어모아 담지 말고 떨어지는 모습 그대로 두라고 했습니다.
그래야 운치도 있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나서 더 따스하다면서 말이죠.

 

오늘 수영장에서 나오는데 가로수 길을 따라 떨어져 있는 낙엽이
어찌나 소복하게 쌓여있던지 아이처럼 좋아라하며
일부러 낙엽 위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그 길을 따라 걷다가 만난 호수는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던 산 그림자로 인해
그야말로 환상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마다 얼마나 아름답던지 가슴이 벅찰 정도였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 아름답다라고 느낄 수 있는 것도  
살아있는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행복이라 생각하니
어머니 당신이 또 그리워졌습니다.

 

어머니,
시월 마지막 주말에 우리 오 남매 모두 부부동반으로
밀양 표충사 근처에 38평 펜션 하나를 얻어 모였습니다. 
현장에 직접 가지 않고 인터넷에 나와 있는 부대시설을 보고 예약해서인지
지불한 금액인 삼십만원이 아까울 정도로 서비스 질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설상가상으로 잘 나오던 물마저 아침에 제대로 나오지 않아
이래저래 불편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래도 이른 아침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과 경상남도 밀양시 산내면 및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의 경계에 있는 산인 높이 1,240m인 가지산과
석남사(石南寺)에 다녀오던 길에 둘째 형부가 산 얼음골 사과는 꿀맛이었습니다.

 

휴일 낮 돌아다 본 표충사는 사명대사 추모제가 열리고 있어
셀 수 없이 많은 등이 걸려있었습니다.
등마다 각기 다른 주소와 이름이 적혀 있는 걸 보면서  
마치 어머니 당신이 제 곁에 있는 것만 같아
한참을 절 마당 구석구석 혼자 두리번거리며 찾았습니다.
살아생전 불심이 강하셨던 어머니가
하루에도 몇 번이고 잘 되기만을 기원하던
오 남매의 이름과 손자손녀의 이름을 새긴 등을
절 마당에 걸고는 흐뭇해하실 것만 같아서 말입니다.
 
어머니, 얼마 전에 둘째 언니는 중국으로 7박 8일 여행을 다녀왔고
오빠는 대학시절 좋아했던 첫사랑으로부터 25년 만에 전화를 받았답니다.
결혼해서 아들 둘 낳고 서울에서 잘 살고 있다는 말과 함께
어머니 당신의 안부와 저 안부까지 챙겼답니다.
오빠로부터 전화를 받은 시간이 영어회화수업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시간이라 그런지  
제 가슴에도 그리운 추억들이 불빛처럼 하나 둘 켜졌어요.
어머니, 사람은 가고 없어도 추억은 그렇게 우리들 가슴속에 남아
아주 가끔은 잊혀진 시간과 잊혀진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는 것 같아요.
 
어머니도 아시지요?
우리 집에 진돗개 두 마리 키우고 있다는 걸요.
두 마리 개 중 수놈인 백구가 우리 집에 자주 놀러온 적이 있는
아들 녀석 친구의 엉덩이를 문 사건이 지난 6월에 일어났어요.
처음 접한 일인데다 물리게 된 이유가 너무도 어이가 없어 황당하기까지 했지만
다친 아이 데리고 병원으로 가서 개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모든 것에 대비해
할 수 있는 치료는 모두 다 해달라고 의사에게 부탁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최선을 다해 우선적으로 했지만 
아이가 넘어져 조그마한 외상을 입어도 마음 아픈 게 부모의 자리라는 걸 알기에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아이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과 함께 그 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했어요. 
부모가 모두 직장을 다니는 그 집 상황을 알기에
상처가 나을 때까지 직접 데리고 다니면서 치료해주고 싶다는 말과 함께...

 

평화롭기만 했던 토요일 점심 시간,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일로 인해
우리 집은 그야말로 개판이 되었어요.
그 날 나랑 뮤지컬 보기 위해서 서울에서 내려오는 반가운 사람 생각에
마음은 새까맣게 타고 차려 놓은 밥상은 모두들 먹는 둥 마는 둥...
 
자식이 물렸다는 그 이유만으로 아이부모는 우리 집에 찾아와
개를 죽인다며 쇠파이프를 휘두르고  
수시로 전화를 걸어 온갖 욕설과 폭언을 습관처럼 일삼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을 들게 했어요.
이유야 어찌 되었건 간에 우리 집에서 기르던 개가 문제를 일으켰으니
어떤 식으로든 보상을 해야하는 건 당연하지만
2천만원이라는 너무 터무니없는 보상비를 요구해 그 금액은 줄 수 없다고 거절하자
결국 고소까지 당하는 사건이 일어나 문제가 해결되기까지 만 4개월 동안
시간낭비에 마음까지 불편한 순간을 행복한 일상 속에서 함께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다행히 지난 달 첫 재판을 다녀온 후 검찰관계자의 중재로
고소인이 우리에게 요구한 금액의 십분의 일인 2백만원이라는 보상금에 합의를 하고
일은 마무리지어졌어요. 

 

그 일로 인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소한 부주의가 뜻밖의 사고로 연결 될 수도 있다는 것과 
어떤 경우에든 사람과 사람사이에 주고받는 말을 할 때에는
필요이상의 감정싸움이 되지 않게 해야한다는 것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마터면 오랜 시간 법정 공방으로까지 이어질 뻔했던 백구사건
그 일을 계기로 안전사고가 나지 않도록 집안곳곳을 살피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말로써 그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안되겠구나 하는 제 마음을 살피는 일까지...

 

어머니,
중학생이 된 신애는 요즘 날씬해지려고 저녁이면 주는 밥을 늘 조금씩 들어냅니다.
그 덕분인지 점점 아가씨 티가 납니다.
반대로 재석이는 엄마가 해주는 음식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며
주는 밥을 다 먹고도 늘 한 숟가락만 더 달라고 할 정도로 먹는 걸 좋아해
그 예전 말라서 살이 좀 쪘으면 하던 시절은 그야말로 옛말이 되었습니다.

 

지난 1학기 시험에서 1등한 재석이는 2학기 중간고사에서 아쉽게 2등을 해
용돈도 기존 그대로 묶였고 받고 싶었던 선물도 받지 못했지만
신애는 이번 중간고사에서 반에서는 1등을 했고
1학년 전체에서는 총점 2점 차이로 아쉽게 1등을 놓쳐
전교 1등을 하면 미국여행을 시켜 주겠노라 약속했던 것을 감안해
비록 전체 1등은 놓쳤지만 겨울 방학 때에는 가까운 곳이라도
저와 함께 해외여행을 다녀올까 합니다.

 

신애는 벌써부터 설레는지 일본, 유럽, 괌, 발리 등
혼자 이리저리 즐거운 상상에 들뜨는 모양이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평범한 사실을 기억하게 하고 싶은 저는  
기말고사 성적에 따라 여행지를 결정하려고 합니다.
그래야만 뭐든 쉽게만 생각하는 아이 생각에 제동을 걸 수도 있을 테고
무엇보다 스스로 노력한 성취감으로 인해 여행을 다녀온다는 즐거움을 
마음껏 느끼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더 크지만
제 마음만큼 느낄지는 받아들이는 아이의 몫이라 지금은 뭐라고 말할 수가 없어요.

 

건강하고 바르게 성장해주는 아이들로 인해
나이 들면서 살아감이 더 즐거워지는 나날들입니다.
수요일이면 수학영재수업 받으러 가는 재석이 픽업하느라 덩달아 바쁘지만
또래아이들 보다 한발 더 앞서가는 걸 보면 제 자식이지만 대견할 때가 많습니다.
수요일은 재석이도 영재수업에 영어학원, 태권도장까지 그야말로 쉴 여유 없이 바쁘지만  
그 날 아이들 시험공부 해야 할 기간과 겹치면
전 그야말로 시간과의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누구나 하는 청소, 빨래, 식사 등 기본적인 집안 일은 말할 것도 없고
오전 9시 30분 전후 수영장에 가서 점심 무렵 돌아와서는
옷을 갈아입기가 바쁘게 점심 식사하러 오는 신랑을 위해 몇 가지 반찬을 더 준비하고
점심 먹고 돌아서면 또 해야 하는 집안 일과
학원에서 먹을 신애 저녁도시락에 가족들 저녁식사까지
정말이지 편하게 다리 한번 뻗을 시간도 없을 만큼
오후 5시를 넘긴 시간이면 영어회화 수업하러 갈 준비하고
수업마친 저녁 8시엔 뒤돌아 볼 여유 없이 집으로 돌아와
식구들과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그렇게 매일을 바쁘게 살고 있지만
스스로 선택한 일들이라 즐거운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도 지난 9월과 10월에는 연이어 서울 시어른이 오셔서
한번에 보름씩 두 달 중 한 달을 우리 집에 머물다 가셨어요.
그러니 제 바쁜 일상이 얼마나 바빴겠는지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어머니는 아실 것입니다.

 

아,
어머니 보고싶습니다.
아침저녁 찬 기운에 춥다는 생각이 들 때면
손발이 차다며 옷을 겹겹이 껴입던 어머니 생각이 절로 납니다.
어머니, 당신이 계신 그 머나먼 나라는 지금 어느 계절을 지나고 있습니까?
그리운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