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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어느 날 아침 풍경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2. 13.

요즘 우리 집은 아침마다 뚝딱거리는 시끄러운 소리에 모두들 일찍 잠에서 깨어난다. 소리의 주범은 30평도 채 안 되는 작은 평수의 주택 세 채를 한사람이 사들여서 제대로 된 반듯한 한 채의 집으로 짓는다고 기존의 집들을 헐고 땅을 고르는 공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오늘도 그 시끄러운 소리는 아침 여섯시 반을 조금 넘긴 시간부터 시작되었지만 나는 열어둔 창문 사이로 들려오는 시끄러운 소리가 시작된 시간보다 훨씬 이른 시간인 아침 해가 지상에 있는 만물을 깨우는 이른 새벽에 일어났다. 원래부터 잠에 대한 욕심이 없는 탓이기도 하지만 중학교 때부터 이어진 불면증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고쳐지지 않고 십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을 두 번이 넘게 살아오는 동안에도 특별히 피곤하지 않는 이상 자명종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시침이 아침 다섯 시를 넘기면 어김없이 눈을 뜬다. 끊임없이 반복된 훈련 속에서 내 몸은 알게 모르게 새벽이라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읽어 내렸다고 해야 할 만큼 오래 전부터 길들여져 있었다.

 

이집에 이사 온 몇 년 동안 정형화된 몇 개의 습관들은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전신이 비치는 대형 거울 앞에 앉아서 제일 먼저 머리부터 단정히 빗어 내리고, 베란다로 가서 창문을 열어 하늘을 천천히 올려다보며 그날 하루 날씨를 살피고, 주방 옆에 있는 세탁실로 가서 간밤에 돌린 세탁기에서 삶을 빨래를 따로 구분해서 가스 불 위에 올리고, 쌀 씻어놓고 1층 텃밭으로 내려가 한창 그 자람이 눈부신 채소에 가뭄 들지 않게 물주고, 들어오면서 대문에 매달린 검정색 작은 주머니에서 우유를 꺼내오는 내 모습은 식구들 단잠을 깨우지 않기 위해서 몸놀림은 아주 빠르면서도 발걸음은 조용하다. 압력 밥솥에 쌀을 안치고 삶은 빨래는 식게 세탁기 옆에 물 부어서 놓아두고, 세탁기 안에 있던 빨래가 마지막 헹굼이 되면 두 번 더 헹굼을 눌러서 기다리는 사이 어제 미처 다 읽지 못했던 신문을 읽거나 국거리나 찌개 거리를 할 재료를 다듬거나 자연 해동을 시킨다. 널어야 하는 빨래는 꺼내고 헹구어야 할 삶은 빨래는 그날 일어난 시간과 빨래의 양에 따라서 손으로 헹굴지 세탁기의 힘을 빌릴지를 정한다.

 

오늘은 어제 더운 날씨 탓에 식구대로 샤워에 아침 점심으로 사용한 수건까지 아무튼 속옷에 수건에 삶은 빨래가 많아서 세탁기에 넣고 돌리는 사이 휑하니 옥상으로 올라가 젖은 걸레로 빨래 줄을 닦고 옷 하나에 빨래집게 세 개씩을 고정적으로 꽂고 햇살과 바람에 잔잔히 흔들거리는 옷들을 보면서 이른 새벽에 일어나 세수한 내 얼굴처럼 마음 또한 개운해진 느낌에 바라보는 것마다 무엇 하나 예쁘지 않은 것은 없다는 생각이 절로 들면서 미처 아침을 즐기지 못하는 회색 빛 도심 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들을 말없이 응시하곤 하다 욕심 내지 않아도 마음 가득 잔잔하게 퍼져오는 행복감에 ‘ 나라는 여자,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옥상에서 내려와 주방으로 곧장 직행해 타지 않도록 미리 불 조절을 해둔 국이나 찌개가 제대로 끓고 있는지 한번 열어보고 제일먼저 딸아이 방으로 가서 침대이불을 무릎 아래로 살포시 내리며 아이의 볼과 입술에 입술을 비비며 "일어나 학교가야지." 하고 깨우면 아이는 눈을 감은 채 엄마인 나를 안으며 시간부터 묻는다. 억지로 눈뜨는 아이에게 "정신 차리고 씻어라." 는 말과 함께 사랑한다는 말로 한 번 더 안아주고 주방으로 돌아오면 싱크대에 부착해 놓은 라디오를 습관처럼 켜고 언제부터인가 많은 것을 기록하는 버릇이 있는 내가 전날 밤 우리가족이 아침에 먹어야 할 식단을 자기 전에 메모해둔 반찬이 어떤 것이 있는지 다시 한 번 확인하고 준비하느라고 분주하다.

 

전날 가족 중 누구 한사람이라도 무슨 음식이 먹고 싶다고 하면 재료가 준비되어 있는 상황이면 아무리 바쁜 아침시간이라도 부침이든 종류가 다른 국이나 찌개가 두 가지 이상이 되어도 가능하면 내 정성으로 다 만들어내려고 하다 보니 자연히 우리 집 아침상에 오른 반찬가지 수는 약간의 살을 부쳐 말하자면 임금님 수랏상이 부럽지 않다. 그런 아내와 엄마를 둔 우리가족은 밥이 보약이라는 말을 누구보다 실감하며 아침식사를 제대로 하면 하루의 시작을 넘치는 에너지로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함께 남편은 아내인 나로부터 아이들은 엄마인 나로부터 대접을 제대로 받고 있다고 생각하며 아주 맛있게 먹는다. 그런 가족들을 바라보는 나는 내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주는 가족들로 인해 누구의 아내 누구의 엄마라는 사실에 자주 감동한다.

 

우리 집에서 가장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남편인데 늦게 자는 아내와 보조를 맞추며 살려고 하다 보니 결혼 십년동안 남편 역시 잠자는 시간이 나와 같은 밤 깊은 시간인 새벽 1시 전후로 잔다. 나야 워낙 오랜 세월동안 몸에 베여서 평균 네다섯 시간을 자고도 생활하는데 아무런 지장을 받지 않지만 낮 동안 많은 시간을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사람은 건강한 에너지를 생성시키는데 필요한 기본적인 휴식은 마땅히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에 특별히 일찍 출근해야 하는 날을 제외하고는 아침 7시 30분 이전에는 곤히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우러 가는 법이 없다. 일 년 365일, 아침 7시 30분 전후로 내 시간이 특별히 바쁘지 않은 한 자고 있는 남편을 깨우러 가는 것은 내 몫이다. 어쩌다 아이들에게 아빠 일어날 시간이라고 알려주라고 부탁하는 날이 있기도 하지만 짝꿍을 깨우는 일은 내게 있어서 즐거운 일상 중 날마다 되풀이해도 또 하고 싶은 따스한 마음이 흐르는 아름다운 풍경 중 하나에 속하는 일이기에 나는 기꺼이 그 즐거움을 매일 되풀이한다.

 

침대 위 이불은 반쯤 걷어찬 상태로 모로 누워있거나 엎드려있는 사람, 이불 사이로 검정 색 삼각팬티가 살짝 보이는 순간 하얀 엉덩이를 두드려 주고 싶은 충동에 내 장난기는 어김없이 발휘한다. 그 날 내 기분에 따라 동갑내기 남편을 깨울 때 부르는 호칭이 참으로 다양한 나는 ○○씨, 자기야, 혹은 장난스럽게 노래를 부르듯 길게 오빠야∼∼∼라고 부르며 살며시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 주기도 하고 이마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올려주며 시간을 알려준다. 가끔은 내 시간이 그리 바쁘지 않거나 남편이 쉽게 잠을 떨치고 일어나지 못하면 채 잠이 들깬 상태의 짝꿍 이마에 사랑스런 눈길로 내 입술을 살며시 포갠다. 그러면 내 행동에 윙크로 답하는 것처럼 한쪽 눈부터 슬며시 뜨며 "알았어. 일어날게."라고 말하는데 그 순간의 표정이 어찌나 귀엽던지 주방으로 향하는 내 발걸음에 행복을 연주하는 경쾌한 다장조의 음표들이 한 아름 달려와서는 내딛는 발자국마다 쪼르르 맑은 물방울소리를 내는 것 같은 착각마저 일순간 느낀다.

 

오늘은 여느 아침과는 달리 녹색 어머니회 봉사가 있는 날이었다. 녹색 어머니회는 학교마다 다소 다르겠지만 딸아이가 다니는 학교는 각반의 회장과 부회장 어머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는 일은 아이들 등교시간을 안전하게 지켜주기 위해서 학교 근처 신호등 없는 사거리나 신호등 앞에서 봉사하는 일을 하는데 활동하는 기간이 일 년 중 일주일 밖에 되지 않아 아쉽다는 생각마저 들기도 한다. 딸아이 아침상을 차려주고 남편에게 아이가 밥 먹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며 말동무가 되어주라고 부탁 해놓고 S초등학교 근처 신호등 없는 사거리로 약속된 시간에 늦지 않기 위해서 거의 뛰다시피 해서 도착했다.

 

녹색 어머니회 봉사를 하면서 느낀 점이 몇 가지 있는데 무엇보다도 S초등학교가 있는 신호등 없는 사거리를 지나치는 운전자 분들 중 아이들 안전과 등교시간을 위해서 자원봉사자들이 멈추라는 신호를 주지 않았는데도 아이들 먼저 학교 보내라고 양보를 하시는 분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이었다. 그런 분들을 뵐 때마다 빠르게 지나치는 차량이지만 미소와 함께 목례로 고맙다는 표시를 하면서도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아이들 중 눈 깜짝하는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작은 안전사고를 염려하며 연신 고개를 좌우로 돌리며 긴장을 놓치지 않았다. 운전자와 보행자들을 적절하게 두루 살피면서 교통의 흐름을 원할 하게 하기위해서 아침햇살에 두 팔이 점점 빨갛게 익어가는 것도 잊은 채 아침시간 40분을 녹색의 거리에서 열심히 깃발을 들고 내렸다. 내가 봉사한 작은 사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보행자 운전자 할 것 없이 98%이상이 질서를 잘 지켰으며 간혹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를 건 내는 분들이 있어서 짧은 시간의 경험이었지만 참으로 이 세상은 살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사시는 분들인지는 알 수 없으나 내가 서있던 그 자리를 스친 모든 이들에게 건강과 행복이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이글을 쓴다.

 

봉사활동을 끝내고 근처 대학부설 유치원에 갈 시간이 다 되어 가는 아들과 출근 전인 남편 생각을 하며 뛰다시피 집으로 돌아왔다. ‘여름은 여름인가보다. 이리도 더운 걸 보면......’혼자말로 중얼거리는 내게 남편은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여서 더 더울 거야, 준비해둔 반찬으로 아들과 지금 막 아침밥 다 먹었어." 짝꿍이 커피 물을 올리는 사이 나는 서둘러 손을 씻고 어른이 먹기에는 다소 적은 양의 아침밥이지만 맛있게 먹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대화가 있는 커피를 짧은 시간동안 즐거운 마음으로 함께 마셨다. 매일 아침 이런 특별한 경우와 지난 산행에 가서 팔을 다쳤을 때의 얼마의 기간을 제외하면 결혼 십년 동안 가족을 위한 아침상을 차리는 것은 언제나 주부인 내 몫이었다. 나는 가족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내 몫이 있다는 사실이 고맙고 행복하다.

 

식구들이 각자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고 나만 남으면 제일 먼저 습관적으로 음악을 틀고 창문이란 창문은 다 연다. 그때부터 내 시간은 내가 관리하기에 따라서 날마다 조금씩 달라진다. 아이들이나 남편이 돌아오는 시간 이전까지 내가 누구를 만나든 어디에 있든 그건 다 내가 결정한다. 따라서 나는 시간을 관리한다고 표현한다. 내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내 인생의 빛깔과 향기도 달라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매순간 내 인생을 즐겁고 의미 있게 보내기 위해서 노력하는 연출자가 되려고 한다. 나의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이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도 여전히 내 시간을 관리하는 진행 중임에 내 행복지수는 오늘도 산뜻한 파랑 색임을 예감한다.

 

 

 

2001년 06월 12일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