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저녁을 먹고 짝꿍(남편)과 마주앉아 이사 가기 전에 버려야 할 것과 새로 사야 할 것들은 얼마나 되며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던 중 뜻밖에도 내 입에서 이런 말이 나왔다. "우리 집에 명품이 뭐가 있나 ......" 그랬더니 이 남자 단숨에 숨어있던 히든카드의 정답을 말하듯 자신이 명품이니까 이사 갈 때 자기만 잃어버리지 않으면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했다. 농담으로 흘러듣기에는 말의 의미가 커 잠간동안이었지만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랬다. 그 사람은 나와 아이들에게 있어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세상에서 가장 귀하고 아름다운 단하나 밖에 없는 명품임에 틀림이 없었다. 생각이 거기까지 닿자 나는 아무런 주저함 없이 짝꿍의 등 뒤로 가서 내 작은 손으로 그의 가슴을 감싸 안으며 살며시 그의 등에 내 얼굴을 묻었다. 익숙한 그의 냄새와 숨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편안하면서도 기분 좋은 떨림이 감동처럼 밀려왔다.
"맞아 자기는 확실히 내게 있어 명품이야. 이 세상에 단하나 밖에 없는 아름다운 명품, 당신이 명품이었다는 사실 오래전에 이미 알아봤어." 자신을 인정해 주는 내 말에 스스로를 명품이라고 한 말이 쑥스러웠던지 짝꿍은 해맑은 미소만 지었다. 미소 짓는 그 사람 볼에는 어느새 귀여운 보조개가 꽃처럼 피었다지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나는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그의 얼굴 구석구석을 내 작은 손으로 한참동안 만지작거리고 말았다.
4월초 이사 갈 새집에서 무엇부터 해야 사랑하는 가족이 기쁠 할 것인가를 즐겁게 고민하는 사람, 내 남자라 불리 우는 그 사람이 바깥에서의 하루일과를 위해 아침식사 후 짧은 시간이지만 부부라는 이름으로 마주앉아 같은 마음의 눈높이로 커피 한잔의 여유를 보내고 집밖을 나서려는 순간 나는 하던 일을 멈추고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거실 문을 열고 현관으로 나서는 짝꿍 옆에 바싹 붙어 우리가족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랑의 언어인 "볼땡"을 소리 낮춰 속삭일 것이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아담한 체구의 나를 위해 허리를 살짝 구부리며 얼른 내 얼굴 가까이 볼을 들이밀 것이다. 수염을 말끔하게 깎아 부드러운 그의 볼에 내 볼을 기분 좋게 살살 문지르며 미리 준비한 초콜릿과 그리 길지는 않지만 내 마음을 표현한 편지가 들어있는 상자를 은근슬쩍 내밀면서 "오늘 당신에게서는 봄 냄새가 난다" 는 기분 좋은 말로 출근하는 그를 대문 바깥까지 따라 나가며 행복한 마음으로 배웅할 것이다.
짝꿍은 발렌타인데이가 상업적인 전략냄새가 나서 싫다지만 나는 내 마음을 전할 수 있어서 참 좋다. 사랑을 느꼈던 처음마음처럼 진하고 설레는 느낌으로 마냥 살아갈 수 있다면 굳이 이런 날이 필요 없을지도 모르지만 마음은 있으되 잘 표현하지 못하고 상대방이 알아주겠지 하는 마음 때문에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날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표현하는 사랑이 알게 모르게 점점 무디어지는 삶 속에서 상업적 핑계거리라도 좋으니 이런 구실이라도 부치며 즐거움을 함께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광고 문구처럼 나이는 그냥 숫자일 뿐이라는 생각, 정말 맞는 것 같다. 사람을 사랑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없듯 사랑을 표현하는데 있어서 나이는 정말이지 그냥 숫자일 뿐이라는 생각, 그 생각 너머 발렌타인데이에 내가 건 낼 마음의 온도를 내 좋은 사람이 헤아려 함께 웃고 즐거워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다.
요즘 들어 부쩍 우리 부부의 대화는 4월초 즈음에 이사 갈 새집을 어떤 식으로 꾸밀 것인가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그러다보니 자연히 같은 공감대를 형성해 서로 마주보는 시간이 길뿐만 아니라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는 그 시간이 마냥 즐겁고 행복 할 수밖에 없다. 새로 이사 할 우리 집은 마당에 잔디와 나무가 적당하게 심어져있고 실내계단으로 연결된 3층 건물이다. 한동안 나라는 여자는 하루에도 몇 번씩 1층에서 3층까지 오르락내리락 하며 아이들과 집안 구석구석을 살피느라 목소리 톤을 높일지도 모른다. 아들 녀석 말대로 지금처럼 수영장이나 그 밖의 취미활동을 하면서 혼자서 집안청소며 가족들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 평균 45kg을 유지하는 내 몸무게가 더 많이 빠져 배에 힘을 주면 갈비뼈가 선명하게 드러날지도 모르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 입에서 우리식구가 살기에는 좀 넓어 집안일 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라는 배부른 불평은 하지 않을 것이다. 어느 집이든 그 집안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안주인의 얼굴표정과 화장실과 창문을 보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좋아서 이사 할 우리 집 곳곳에 나라는 사람의 정성어린 손길이 봄꽃처럼 환하게 피어 사랑하는 내 가족과 우리 집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편안하면서도 기분 좋은 느낌으로 다가가 사람도 때로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남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하고 싶다.
리모델링(Remodeling)이 끝나면 손 없는 날을 택해서 새 집으로 이사 할 것이다. 한동안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지금 살고 있는 이곳에서의 몇 년간의 시간들이 추억되어 내 가슴에 진한 그리움으로 돋아나겠지만 앞산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봄이면 아카시향기를 공짜로 실컷 맡을 수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은 벌써 설렌다. 부부로 살면서 매번 결 고운 몸짓과 눈짓으로 상대방을 감동시킬 수는 없다 해도 아주 가끔은 마음 속 깊은 곳에 잠자고 있는 깊고 따스한 언어들을 꺼내어 상대를 진심으로 이해하며 다가가는 기분 좋은 말 몇 마디를 먼저 할 수 있어야 한다. 부부로 살면서 서로 마주보며 같은 생각을 할 때처럼 마음 편하고 행복할 때가 없다는 것을 아는 이 나이에 나를 특별한 여자로 만들어 준 동갑내기 짝꿍에게 발렌타인데이라는 기분 좋은 핑계를 구실로 삼아 정이 묻어나는 가슴 따스한 내 사랑을 표현하고 싶다.
단하나 밖에 없는 당신이라는 이름의 명품이 내 곁에 있어
진정 나는 행복한 여인이라고...
우리 서로 사랑한다는 말을 아낌없이 주고받을 수 있는 부부라는 운명으로 만나서
감사하다고......
2003년 02월 13일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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