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오래 전, 남편이 처음 휴대폰을 장만하던 날, 부러움 반 흥미로움 반으로 별별 질문을 다하며 휴대폰 모양새를 이리 저리 살폈던 기억 ...요즘처럼 디자인과 기능이 다양하지 못했던 그 당시는 무선 전화기처럼 크고 색상도 대부분 검은색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볼품없이 뭉툭하기만 한 휴대폰은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나거나 남편이 지방으로 출장을 가야 할 때 연락수단으로서의 기능을 톡톡히 해 걸어 다니는 재산 목록 일호로 대접을 받기에 충분했다.
2003년 지금에 이르기까지 남편의 휴대폰 번호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똑같지만 휴대폰은 이런저런 이유로 다섯 번이나 바꾸었다. 물론 사업을 하는 관계로 사용량이 많은 탓에 배터리 수명이 길지 않았다는 건 인정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동안 우리 모두 문명의 이기에 이미 깊숙이 젖어버린 건 아닌가 하는, 모든 게 일사천리로 빠르게 진행되는 현실 속에서 생각과 행동도 알게 모르게 빨리 빨리 라고 외치며 디지털화 되어 가는 것만 같아 마음 한 구석 씁쓸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몇 년 전, 처음으로 내 이름이 입력된 휴대폰을 남편에게서 선물 받았던 날을 잊을 수가 없다. 그 날은 어린 아들이 아파서 대구가톨릭병원에 입원시킨 날이기도 하지만 평소 내 마음을 읽어 내린 남편이 휴대폰 번호를 친정 주소로 했다는 말에 속으로는 눈물겹도록 고마웠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저 고맙다는 말과 함께 잘 사용할게 라는 말만 남길 수밖에 없었던......그 후 지금까지 나 역시 외출 할 때는 휴대폰을 제일 먼저 챙기는 버릇이 생겼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자주 휴대폰을 끄기에 아직은 문명의 이기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사람이 나 라고 말 할 수도 있지만 종종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가 많다.
이미 편리한 생활에 익숙해진지 오래지만 때때로 지금처럼 첨단화 된 문명 속에서가 아니라 조금은 불편해도 이웃 간의 정과 사람 사는 정이 무엇인지 알 것 같은 몇 십 년 전의 그런 환경으로 돌아간 듯 삶의 방식을 바꾸어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이유의 하나로 가끔은 휴대폰 전원도 끄고 음악도 듣지 않고 TV도 보지 않는다. 이런 돌발적인 상황은 여기에서만 그치지 않고 집에 크기가 다른 두 개의 청소기가 있고 부직포밀대까지 있음에도 불구하고 몸이 특별히 아파 꼼짝하기 싫은 날이 아니면 나라는 사람은 아주 당연하다는 듯 직접 손으로 걸레를 빨고 집안 구석구석 먼지를 닦아낸다. 이런 습관은 땀을 흘리고 나면 비로소 노동을 한 것 같은 보람이 한 몫을 하지만 무엇보다도 편리한 기계에 의존해서 쉽게 뚝딱 해치우듯 하는 게 영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언젠가 거실에서 식구들이 모여 앉아 텔레비전을 보다가 "우리 문명의 이기에서 벗어난 생활을 해 볼까?" 뜻밖의 말에 남편은 "좋지." 하며 반응을 보였지만 두 꼬마의 항의가 거세 비록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가끔은 그 편리함에서 멀어지고 싶은 게 사실이다. 다 버리고 온전히 살아가기에는 이미 편리한 문명과 너무 친숙해져있기 때문에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불편하겠지만 우선 TV, 컴퓨터, 개인이 들고 다니던 휴대전화 세 가지만 버리고 살아도 엄청난 생활의 변화가 오지 않을까 싶다. 처음에는 익숙한 것들로부터 단절된 상황에서 기존에 즐겼던 문화와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겠지만 나날이 빠르게 변화되고 있는 디지털세상에서 한발 물러서서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것도 참 재미있을 듯싶다.
도시의 화려함과 문명의 이기를 누구보다 즐기고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가끔은 아주 오래 전, 전기 불 대신 호롱불 아래서 낡아서 떨어진 어린 자식들의 옷소매를 식구들이 잠든 늦은 밤에 혼자 불 밝혀놓고 한 손에 골무를 끼고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깁던 내 어머님이 지금 내 나이가 되어 살던 그 시절이 그립다. 그리움의 원천이 어디까지 깊은지는 나도 모른다. 아주 가끔 이렇게 내가 몹시 낯설어 질 때가 있다. 두개의 서로 다른 모습을 팽팽하게 사랑하며 살고 있는 지금의 내 자신이......
2003년 09 20일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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