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생각과 느낌

회상(回想) - 어떤 졸업식

by 시인촌 2005. 12. 14.

지난 16일, 아들녀석의 유치원 졸업식이 있었는데 대학부설유치원이라 졸업식을 대학강당에서 했습니다. 저마다 꽃과 카메라를 손에 들고 삼삼오오 모여들기 시작한 졸업식장은 요즘 사람들의 의식을 반영이라도 하려든 듯 놀랍게도 원생 3명 중 2명은 아빠가 참석했을 정도로 아빠들의 열기가 대단했습니다. 오전 10시, 그것도 평일이라는 사실이 좀 마음에 걸렸지만 참석한 수많은 젊은 아빠들이 손에든 카메라 플레쉬를 연신 터트리며 첫 졸업을 맞이한 자녀에게 마음껏 축하해주는 모습은 보기 좋았습니다.

 

시간은 흘러서 원장선생님의 축하와 함께 각종 상이 주어졌습니다. 일년 동안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건강한 모습으로 유치원을 다닌 모든 어린이들에게 상장 하나씩을 주었는데 올해 7살인 아들녀석은 슬기로운 상을 받았습니다. 고사리 같은 작은 손에 쥐여져 있는 상장을 보면서 엄마인 나는 졸업식장에서 받은 슬기로운 상이 밑거름이 되어 먼 훗날 아들의 삶이 성장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했습니다.

 

어느 졸업식에서도 예외일 수 없는 말인 졸업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유치원원장선생님의 축하말씀을 들으며 누가 볼세라 얼른 옷소매로 흐르는 눈물을 훔쳐냈던 초등학교 시절 졸업식장에서의 글썽이는 눈매의 어린 나를 기억해내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싸한 감동에 마음 한구석 아려옴을 어쩌지 못했습니다.

 

♣ 사시사철 변하는 계절에 맞춰 색색의 옷들로 갈아입는 산의 모습이 흡사 한 폭의 수채화와도 같은 아름다움을 간직한 전형적인 시골마을, 어쩌다 하루에 서너 대 지나가는 차량을 만나면 흙먼지 뒤집어쓰면서도 괜스레 기분이 좋아 누가 빠른지 내기라도 할 기세로 뜀박질을 하던 순박한 시골아이들에게는 학교는 인간이 행해야할 가장 기초적인 인격형성을 가족이외에 스승과 제자, 친구라는 관계로까지 확대하는 마음의 눈을 가지게 했으며 그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협동심과 선을 향한 도덕과 꿈을 위한 용기도 배웠던, 학교는 배움의 장을 뛰어 넘어 무한한 생각의 쉼터가 되어주었습니다.

 

지금처럼 유치원이나 학원을 모르고 자라온 70년대 시골아이들에게는 태어나 처음으로 맞는 졸업식이 초등학교 졸업이었습니다. 졸업식이 있던 그 해 1월은 바람이 몹시 불었습니다. 불어오는 바람을 등에 지고 운동장 한가운데 모여서 추운 날씨에 언 볼을 녹일 사이도 없이 꿋꿋하게 두발을 지탱하고 서서 졸업식순이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두 눈과 두 귀를 활짝 연 눈망울이 너무도 어여쁜 아이들, 그 아이들이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아름 선사합니다...로 시작하는 졸업식노래를 부르면서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제 감정에 복받쳐 여기저기 훌쩍훌쩍 끝내 울음바다를 만들어버린 졸업식장의 악동들이 되어버렸습니다.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아니 예뻐할 수밖에 없는...

 

정들었던 교실에서 선생님과 친구들과의 아쉬운 작별을 끝내고 나오는데 교문 밖까지 길게 늘어서서 졸업하는 언니, 오빠, 형들의 발걸음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재학생들을 보면서 이젠 정말 끝이구나 하는 생각에 마지막수업의 한 장면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는 것을 애써 지우려 집까지 어떻게 달음질쳐왔는지 모릅니다.

 

졸업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시작이라는 말, 어떤 졸업식장이든 예외 없이 등장하는 익숙한 말이라 수도 없이 들었지만 언제나 그 말 앞에서는 가슴이 서늘해짐을 느낍니다. 가만히 돌아다보니 언제나 끝은 또 다른 시작이었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단절된 시간이 아니라 연속으로 흐르고 또 흘러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하는,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때때로 그 연속성이 어느 날 갑자기 정전된 것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둠으로 인식될 때, 우리네 사람들은 산다는 것에 힘들어하기도 하고 자칫 흐르기 쉬운 포기하는 마음으로 인해 긴긴 시간을 절망이라는 늪에 빠지기도 합니다.

 

오늘은 어린 시절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었을 때 망설이지 않고 각자의 꿈을 말할 수 있었던 그 용기를 품어보는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꿈이 비록 미완성으로 끝날지라도 새로운 날들을 바라보는 시작이 잘될 거라는 믿음과 더한층 노력하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에 대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라면서......

 

 

 

 

2001년 02월 26일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