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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오늘은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3. 9.

사람에게는 사람임을 느끼게 해주는 많은 감정들이 있습니다.

사랑, 그리움, 분노, 슬픔......

하루에도 몇 번씩 뒤엉키는 감정을 일상 속에서 어떻게 잘 조절하느냐에 따라서

우리들의 삶이 행복과 불행으로 나누어지며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다른 이들의 시선에 이런 사람이라는 고정화된 이미지를 만들어냅니다.

 

오늘은 그대와 나 사이에 흐르고 있는 고정화된 편견을 버리고
보이는 것 너머 흐르고 있는 아름다운 사람의 향기로
이 세상 모든 사물에도 사이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려합니다.
그리하여 비로소 마음에 난 사이로부터 조금 자유로워지고 싶습니다.
하늘과 바람과 햇살이 그리운 날 ,
사람임을 느끼게 해주는 순한 감정들만 모아서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겠습니다.
내 정직한 눈빛과 한마디 말이 허공 속에서 사라지지 않을 정도로만...

 

마음과 마음 사이에도 섬이 있습니다.

마음의 섬 안에도 사이가 있습니다.

찰나처럼 이어졌다 끊어지는 번뇌(煩惱),

번뇌 안에도 사이가 있습니다.

그 사이를 조용히 들여다보면 모두가 하나로 이어져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무수한 생각의 조각들로 이어진 만남...

 

문득 스치는 생각 하나 있습니다.
삶과 사랑은 그저 한 잔의 물과 같으며
이 세상 어디에도 주인 없는 빈 잔은 없다는 생각 말입니다.
나는 가끔 넘치게 가득 채운 물보다
밑바닥이 언뜻 언뜻 보이는 반잔의 물이 더 소중할 때가 있습니다.
그만큼 남아 있는 시간이 중요하고 다가올 행복이 더 중요하다는
내 나름의 분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넘치게 가득 채우진 삶보다는 채울 수 있는 여백의 삶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아는 나이가 된 까닭이기도 합니다.


어디선가 맑은 바람 한줌이 내 안으로 걸어 들어옵니다. 
눈을 감으니 마음은 어느새 깊은 산 속 산바람에 평온하게 젖어듭니다.  
이렇게 마음이 편안하게 젖어드는 날에는 나로 인해 마음상한 사람 몇 몇 불러내어 

향(香), 색(色), 미(味) 골고루 갖춘 깊고 그윽한 맑은 차 한 잔을 대접하고 싶습니다.


오늘은 산 빛을 닮은 맑은 사람으로 남고 싶습니다.
흐르는 물살처럼 소리 내지 않아도 내 깊은 눈매에 그 누군가 들어서면
금방이라도 그 고요에 젖어들 맑은 영혼의 소유자로 남고 싶습니다.
채우고 비우고 또 채우고 비우는 것이 삶이라고 하지만
오늘은 내 삶에 햇살 한줌으로 소망을 우려낸 사랑 차 한 잔이면 족할 것 같습니다.


오 늘 은 ......

 

 


2003년 01월 27일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