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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커피에 관한 단상(斷想)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3. 30.

우리나라에 커피가 처음 들어온 것은 구한 말 러시아와 일본이 우리나라의 이권을 찬탈하려 각축을 벌이던 아관파천을 전후한 시기인 것으로 보인다. 문헌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마신 사람은 고종 황제로 1896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를 마셨다고 되어 있다. 쌍떡잎식물인 커피나무는 다른 식물들과는 달리 하나의 나뭇가지에 향기롭고 달콤한 크림 향이 나는 하얀 꽃과 미 성숙된 열매인 녹색의 체리(cherry), 숙된 열매인 붉은 색의 체리가 함께 달린 것을 흔히 볼 수 있는 아주 특이한 상록의 열대 관목이다. 커피의 맛은 커피나무의 품종과 원산지, 열매의 가공방법, 원두의 배합, 볶는 방법과 정도, 분쇄크기, 추출방법 등 커피의 생산 초기부터 마시는 그 순간의 분위기까지 모든 단계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오늘 나는 커피에 관한 역사 혹은 원산지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접어 두려고 한다.


♧ 커피에 관한 단상 - 그리움 & 사랑


70년대 후반, 사춘기를 보내면서 커피에 대한 막연한 동경에 한때 열병을 앓았었다. 가끔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낯선 사람이나 낯익은 손님들에게 장미꽃이 그려진 커피 잔에 손님의 취향을 물어서 정성스레 대접하는 풍경을 볼 때마다 나도 얼른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저 커피의 맛을 언제 제대로 알 수 있을까 하고 내심 조바심까지 내기도 했다. 그 당시 내 눈에는 커피를 마시는 이는 나 보다 높은 족속에 속하는 우아한 귀족처럼 보였고 머리에 든 것이 많은 지식인으로 비춰졌다. 어쩜 이런 내 사춘기적 발상이 지금까지 이어져 커피를 날마다 마시는 샘물처럼 습관에 젖어 마시는지도 모를 일이다.

 

전문커피숍을 찾다보면 그 많은 커피 종류에 난 아직도 놀란다.
레귤러, 카푸치노, 아이쉬리, 헤즐넛등......
아주 오래 전 누군가 나에게 물어 왔다.
어떤 커피를 특히 좋아하는지?
그래서 난 서슴없이 이렇게 대답을 했다.
커피와 우유거품의 조화에 휘핑크림과 톡 쏘는 계피 향의 이탈리아식커피 카푸치노부터 집에서 가끔 뽑아먹는 원두커피 그리고 TV광고에 나오는 여왕이 마시는 커피 또는 산행하는 중간에 설치된 커피자판기에서 뽑아든 고급 블랙커피까지 다 좋아한다고... 다만, 내가 마시는 커피의 종류는 다양하나 그날 내 기분과 마주앉은 사람에 따라 달라진다고... 받아들이는 상대에 따라서 어쩌면 내 대답이 황당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도 어떤 커피를 딱히 즐긴다고 고집하지는 않는다.

 

분위기, 느낌, 기분, 때와 장소, 마주한 사람에 따라 내가 마시는 커피가 달라지는 그 이유를 본인인 내가 아직도 온전히 알지 못한다면 그 누가 이해할까마는 막연하게나마 드는 생각은 스치듯 지나가는 감정의 영향 탓이 아닌가 싶다.
그 유별난 감정을 그리움 & 사랑이라고 풀어놓고 싶은......


커피는 사랑이다.
커피는 그리움이다.
커피는 사람 사는 세상과 가깝다.
커피는 그대 그리고 나를 언제나 함께 있게 한 그리운 풍경이다.

 

 

 

 

2000년 12월 21일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