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또래의 여자들이
이성에 관심을 가지고 외모에 신경 쓸 즈음
이종사촌오빠가 국회의원에 두 번 당선되어
국회 내에서도 요직을 차지해
정치라는 게 어떤 거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다.
또래 여자들이 결혼 & 사랑을 노래 할 때
나는 정치, 경제, 사회현안들에 관심이 쏠려
하루라도 신문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을 정도로
신문과 신동아, 월간조선에 게재된 기사들을 면밀히 읽어
한반도 상황에 대해서 하나 하나 배우고 익혔다.
오랜 동안 그러한 시간 속에 놓여 있었던 나였지만
여자는 시집 잘 가면 그 이상 더한 행복은 없다는 논리에
알게 모르게 내 자신 동화되어
한때 나를 들뜨게 했던 관심들로부터 점점 멀어진...
지금은 평범한 일상에 묻혀 나에게 주어진 수많은 이름...
여자, 아내, 엄마, 며느리, 딸...
더 나아가 중년이라고 일컬어지는 사십 대 초반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벌어지는 오밀조밀한 행복이야기들을
삶이라는 이름으로 풀어내고 있다.
윤회설이 정말 가능한 현실이 되어 다시 태어난다면
난 정치를 하거나 경제를 이끄는 CEO가 되고 싶다.
그런 생각은 내 속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아직 어린 두 아이에게 보상심리 같은 바램으로 이어져
가끔 지금 내가 뭐하고 있는 거야 하는 생각마저 들게 하지만
아무튼 이번 17대 총선 결과를 바라보는 내 마음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부끄럽기 그지없다.
오랜 동안 악습처럼 이어진 지역주의...
이번에도 그 벽을 넘지 못했다.
어느 지역에서는 특정 당이 점령하다시피 하는 대한민국...
참으로 말문이 막힌다.
나이, 성별, 지역에 관계없이
보고들은 것을 생각하며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면
만년고질병인 지역과 집단이기주의에 팽배해
어느 지방에서는 특정 당이 휩쓸다시피 하는 상황은
만들지 말았어야 했다는 게 대다수 국민의 생각일 것이다.
주사위가 이미 던져진 상황 속에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위안 삼을 수 있는 것은
아직 정치에 때묻지 않은 초선의원과 여성의원이
이번 17대 총선에서는 여느 총선 때와 달리
두드러지게 정계에 많이 진출했다는 것과
지지하는 후보와 지지하는 당을 표기하는
1인 2 표기 투표 재를 도입한 일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내 부모님에게서 나로 이어진...
더 나아가 내 두 아이가 태어났고 성장해야 할 이 나라를
나는 사랑할 수밖에 없음으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기도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지켜 볼 것이다.
무수히 산재해 있는 문제들을 정치권이
어떤 식으로 화합하며 성장하는지를...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사랑하고
평화와 화합을 꿈꾸며 묵묵히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이 땅 곳곳에 뿌리내린 나무들과 이름 없는 풀꽃들을 사랑하고
세계 속에 한국을 건설하기 위해
곳곳에서 지혜와 땀을 하나로 뭉치는 이들을 사랑한다.
내 부모님에게서 나로 이어진...
더 나아가 내 두 아이가 태어났고 성장해야 할 이 나라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운명으로 태어난 죄를 사랑하므로...
2004년 04월 16일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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