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하고 걸어오는 도중에서 만난 벽보 포스트
‘자극하면 할수록 더 강해진다’
이 문구를 접하는 순간, 내 머리 속은 이미 좀 전 수영을 하고 난 뒤 사우나를 즐기고 샤워를 한 보송보송한 상태가 아니라 치열한 상대와 싸우는 사람처럼 온통 뒤범벅이 되어 집으로 오는 내내 그 생각에 빠졌다.
자극하면 할수록 더 강해진다. 강해져... 자극할수록...
혼잣말이 입안에서 태엽처럼 감길 때마다 그 대답은 달랐다.
어머니, 야망, 분노, 복수, 욕망, 인간 등 등...
여자로서는 약하지만 어머니로서는 강하다는 말이 있듯이 자식을 위한 일이라면 목숨도 마다하지 않고 자신을 던지는 헌신적인 어머니, 자극하면 할수록 더 강해지는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했던 처음 마음이 어느 새 출세라든가 성공이라든가 하는 말로 대신 이해되기도 하는 야망이라는 말로 옷을 갈아입더니 언제 또 생각이 바뀌었는지 분노라는 낱말이 머리 속을 맴돌고 있었다.
이 글을 읽는 그대들은 지금껏 살아오면서 분노하는 마음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있다면 무엇 때문에 분노하였는가 한번쯤 곰곰이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혹시 사소하다고 느껴지는 일에 그대는 과잉반응을 하지 않았는가?
그 결과 돌이킬 수 없는 분노라는 올가미에 걸려 오래도록 자신을 무너트리며 아파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분노라는 말을 떠올리는 순간, 온 몸이 빨갛게 데인 것 같은 느낌이 들더니 순식간에 머리끝이 삐죽 서는 기분마저 들었다. 분노는 자극하면 할수록 더 강해지고 단단해져서 어느 시점에서 멈출지 모를 정도로 과히 폭발적이다. 분노는 화산과 같다. 여기서 펑, 저기서 펑, 자극 할 때마다 점점 더 강도가 세지는...
복수는 분노라는 감정에서 한 층 더 업그레이드 된 분노의 절정에서 이루어지는 감정이다. 삶에서 멀리할수록 평온한 상태를 유지 할 수 있는, 인간의 감정 중 가장 위험한 인자를 지닌 것이기에 자신과 타인을 위해서 처음부터 싹을 틔우지 않는 것이 좋다. 자칫하다가는 귀중한 생명과 직결되는 일이 비단 영화에서만 이루어지는 건 아니기에...
인간이라고 대답한 처음 말이 시간이 경과하면서 인간의 내면 안에 잠재해 있는 감정들로 탈바꿈을 한 것이다. 생각이 거기서 멈추었다면 좋았을 것을, 우습게도 집 가까이 다다르자 포스트의 그 여인 때문인지 아니면 언제인가 스치듯 읽은 적이 있는 맛있는 섹스라는 말 때문인지 욕망으로 변해 있었다.
맛있는 섹스...
사실, 마흔을 넘긴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섹스라는 표현을 하기가 영 개운치 않다. 내 안에 잠재해 있는 보수적인 그림자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왠지 사랑이 가볍게 표현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서 무엇보다 싫다. 하여, 나는 섹스 대신에 재즈처럼 달콤하고 비처럼 은은한 몸 사랑으로 정정하여 표현하려고 한다.
인간의 내면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욕망의 빛은 다 한 뼘 거리에 있다.
인간이라는 동물은 복잡한 것 같지만 의외로 단순하기에 몸 사랑이라는 욕망 앞에서는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젊은이와 늙은이, 남녀 구분도 제약도 없다. 욕망에 관한 한 인간이 인간으로 남아있고자 원할 때에는 이성의 지배를 받지만 동물적인 측면이 더 강할 땐 감성의 지배를 당하기가 쉽다. 모두가 다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치우침을 이야기 할 때 그렇다는 이야기일 뿐, 아무튼 인간은 남녀 할 것 없이 어느 시점의 나이가 되면 누구나 본능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살수는 없다.
원초적인 본능, 인간의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몸 사랑...
자극하면 자극할수록 더 강해지는 그 무엇 중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몸 사랑은 어느 각도에서 바라보면 소용돌이라는 거대한 늪과도 같다.
한 번 빠지면 쉬 나오기 어려운...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라면 ‘죽어도 좋아’라는 영화 제목처럼 그 늪에 질퍽하게 빠져도 좋으리라. 인간은 외로워서 짝짓기를 한다고 했던가... 그 말 누가 한 말인지 모르겠지만 정말 수긍이 가는 말이다. 이 밤,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를 풀고 싶다. 자극하면 할수록 더 강해지는 그 무엇에 관한 접근 코드를...
지금 내가 하고 있는 말이 타인에게 어느 정도 이해되는 논리로 이끌어 가는가 하는 문제에 부닥치니 결국 자극하면 할수록 더 강해진다. 강해져... 자극할수록... 하는 의문은 인간이라는 말 앞에서 마침표를 끝내고 싶어하는 나를 느낀다.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그 깊이를 알 수가 없다고 하나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이고 보면 이 얼마나 인간의 무게가 가벼운가. 꽃피고 지고 하는 일처럼 어느 날 사라지고 마는...
사람이 만들어 낸 감정의 빛깔도 순환하는 세월 앞에서는 무릎꿇는 일이 있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여기서 좀 더 다른 각도의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고자 한다. 자극하면 자극할수록 더 강해지는 그 무엇이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소망한다. 자극하면 할수록 더 강해지는 이름의 실체가 좋은 의미의 용기와 노력이라는 다른 말로 발돋움하여 개인과 사회, 국가 더 나아가 인류발전을 위해 성숙하기를...
2004년 05월 14일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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