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에서 추억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추억(追憶) [명사][하다형 자동사·하다형 타동사]
[되다형 자동사]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 생각. 추상(追想)."이라고 명시되어있다.
언젠가 나는 ‘감성적인 것들에 이유를 달다. ’라는 제목의 글을 쓰면서
"추억이란 한 잔의 슬픔과 두 잔의 기쁨으로 만든
칵테일 속에 어리는 풍경 같은 것"이라고 했었다.
우리의 지나온 과거가
비록 가슴을 쓸쓸하게 하는 한 잔의 슬픔으로 출렁인다 해도
오늘을 사는 두 잔의 기쁨으로 그 슬픔마저 끌어안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아름답다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사람들이 흔히 추억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들은
오래전에 쓴 일기나 사진 혹은 편지로 기억되는 경우도 많지만
가슴속에 집 짓고 사는 생각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므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다르게 기억되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많은 사람은 그러한 사실을 모르고 지나치거나 설혹 안다고 해도
자신도 모르게 새로 입력된 기억에 점차 익숙해지는 모순을 안고 산다.
대부분의 사람은 누군가와의 추억을 떠올릴 때
함께 했던 시간 속에 나누었던 대화보다는
특정장소나 행동, 음식, 음악 등을 통해서 더 오래도록 기억하는데
이런 때에도 역시 오류는 종종 발견된다.
며칠 전 누군가와의 전화통화 중에
추억이란 것에 관해 이야기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나는 추억이란 물 위에 비치는 햇살일 수도 있고
기다려지는 첫눈과도 같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배경에는 추억의 단점이자 장점인 잊었다 생각했던 것들도
어느 순간 되살아나는 불씨처럼 살아날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지만
사람들이 그토록 애틋하게 여기는 것들도
시간이 흐르면 상처 없이 잊혀 가기도 한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어떤 이에게 있어 추억은
있었던 사실을 부인하고 싶을 만큼 고통스럽고 지독한 것일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 있어서 추억은
궁금해하던 사람에게서 날아온 반가운 편지와도 같을 수 있다.
추억이 벗어버리고 싶은 거추장스러운 옷에 불과하든
오래도록 기억하고 싶은 아름다운 풍경이든 간에
삶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추억이 새롭게 만나야 할 시간을 방해하는
훼방꾼 역할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고생했던 추억도 지나고 보니 상쾌하다."라고 말했던
‘에우리피데스’의 말도 있지만
지금의 우리를 존재케 한 지나간 것들을 온전히 무시하고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살아내야 할 시간보다 살아온 세월이 더 소중하다 말할 수는 없다.
비우고 잊어야 비운만큼 잊은 만큼 채울 자리가 생긴다는데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호흡 짧은 글을 쓰는 동안
시간과 공간을 무시한 지난 것들과 만났다.
타는 저녁노을, 감미로운 음악, 향기로운 차, 놓쳐버린 버스, 봄비, 첫눈, 전화 등.
모습을 달리하는 풍경 속에 기억만으로도 가슴 뻐근한 얼굴도 있고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는 얼굴도 있고 다시 만나고 싶은 얼굴도 있었다.
"아름다운 추억은 바람직한 것이다.
그러나 잊을 수 있는 능력은 위대성의 진짜 상징이다. "라고 했던
‘앨버트 후버드’의 말이 가슴에서 식지도 않았는데
나는 덜컥 소망하나를 품어본다.
수십 수백 번을 그리워하고 떠올려봐도 싫증 나지 않고 아프지 않은
추억 몇 개쯤 계절이 바뀔 때마다 꽃처럼 활짝 피어났으면 좋겠다고.
2006년 04월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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