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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과 느낌

지금은 단속 중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6. 1.

며칠 전, 수영장 가는 사거리에 ‘단속 중’이라는 팻말이 서 있었습니다.
수영장 갈 때 분명 보았던 그 팻말이 운동을 마치고
다시 그 사거리를 지나칠 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순간, 그 무엇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마음에 허전함마저 돋아
팻말이 서 있던 자리를 신호등이 파랑 색으로 바뀔 때까지 오래도록 바라보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단속 중’이라는 말이
머리와 가슴에 작은 풍경을 만들어내며 쉬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단속 중이라는 글 바로 아래에는 경찰이라는 단어가
낱말풀이처럼 선명하게 적혀 있었는데
나는 왜 그 순간,
과속차량 단속 혹은 안전벨트 미 착용 단속 등
교통과 관련된 것들을 떠올리지 않고  
마음에 그 글귀를 조정하듯 맞추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 앞에서 결론도 내리지 못한 채
오랜 시간 단속 중이라는 말에 마음을 묶여버린 나는
그 사거리를 지나칠 때면 내 자신에게 묻곤 합니다.
지금 나는 무엇부터 단속해야 하는가 라고 ...
  
이 글을 읽어 내리는 여러분은
‘단속 중’이라는 말 앞에서 제일 먼저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지금 여러분은 과연 무엇부터 단속하시겠습니까?
무질서를 단속하시겠습니까?
이기주의를 단속하시겠습니까?
약해지는 마음을 단속하시겠습니까?
자꾸만 인색해지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거리를 단속하시겠습니까?
아니면 건강을 잃으면 세상을 다 잃은 것과 같다는
어디선가 본 듯한 문구를 떠올리며 건강을 단속하시겠습니까?

 

뭐든지 좋습니다.
한 번쯤 여유를 가지고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부터 단속해야 할지
하나 하나 챙겨보고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분이 단속해야 할 그 대상이
때로는 형식에 치우쳐 불편을 초래할 수도 있겠지만
마음속에 차 오른 생각들에 귀기울여 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은 사춘기에 접어든 자식을 단속하겠다는 분도 계실 테고
어느 분은 흔들리는 가정을 단속하겠다는 분도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요.
나라안 밖과 우리생활 주변곳곳을 둘러보면
단속할 대상이 참으로 많을 테지요.

 

오늘은 나로부터 출발을 해서 가족과 이웃, 더 나아가 밝은 사회로 전환되는
단속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구속 하나 풍경인양 마음에 들여놓아도 좋은,
그런 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여, 지금은 단속 중...

 

 


2004년 05월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