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 초 두 아이의 중간고사를 마친 우리 집은 책읽기에 한창 재미를 붙였다.
‘다빈치 코드’를 비롯해 만화책을 좋아하는 아들녀석을 위해 구입한
‘만화삼국지’ (평역 이문열, 만화 이희재) 열 권과
딸아이가 친구들과 영화(미션임파서블3) 보러 가는 길목에서
사 가지고 온 ‘오만과 편견’ 이라는 책이 이 달 우리 가족이 읽고 있는 책들이다.
남편과 아들 녀석은 만화삼국지를 틈나는 대로 읽어서
마지막 책장을 덮은 지 이미 오래고
나와 딸아이는 다빈치 코드와 오만과 편견을 서로 번갈아 가며 읽고 있지만
나는 다빈치 코드를, 딸아이는 오만과 편견을 다 읽지 못해
읽고 있는 현재진행형 상태로 있다.
영화보다 흥미로운 소설이라는 댄 브라운 지음의 ‘다빈치 코드’를 다 읽고
엄마인 내게 넘겨준 딸아이는 틈틈이 ‘제인 오스틴’의
‘첫인상’ 이었던 원제를 <오만과 편견>으로 개작한 소설을 읽고 있다.
623페이지라는 방대한 분량의 다빈치 코드는
학교수업과 학원수업을 마친 늦은 시간에 시작하고도 삼일만에 다 읽더니
오만과 편견(PRIDE & PREJUDICE)은 읽을만하다는 소리는 하면서도
어찌된 일인지 며칠째 시간을 끌고 있다.
영국출생인 Jane Austen(1775-1817)은 18세기부터 현대까지 200여 년 동안
영국뿐 아니라 전 세계 독자들이 가장 선호하는 여류작가로 뽑혔는데
‘운명은 사랑을 따라 변합니다.’ 라는 책표지에 적힌 글귀는
사십대 초반인 내게도 여전히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사랑이 시작될 때 빠지지 쉬운 오만과 편견에 대한 생각을 잘 표현한 이 소설을
중학교 2학년인 딸에게 권한 건 비록 소설 속에서 행해지는 사랑이지만
간접경험을 함으로써 진짜 사랑할 나이가 되었을 때
좀 더 진지하고 지혜로운 사랑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뜻에서였다.
책 앞표지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사랑이 시작될 때 남자들은 ‘오만’에 빠지기 쉽고
여자들은 ‘편견’에 곧잘 빠진다는...
10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에 한 인간의 첫인상이 결정되는 것이라면,
그것은 편견에 사로잡힌 우리 인간이 범하는 첫 번째 오류요, 오만함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처음 마주하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첫인상을 무시하지 못한다.
책 이야기를 하다가 별안간 발코니 창을 활짝 열고
나무와 나무사이, 꽃과 꽃 사이에 바람이 파도처럼 출렁이는 그 사이를 응시한다.
오후 세시의 햇볕도 무료했는지 나처럼 그 좁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간다.
그 속에서 나는 이방인이 되어 중얼거린다.
나이가 든다는 건 세상과 사람에 대한 오만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어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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