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어머니,
어머니 살아 계실 때 그토록 좋아했던 가을이 왔어요.
어머니 그거 아세요?
부시도록 푸르고 아프도록 서늘한
이 가을을
막내 딸 숙이가 더 좋아한다는 사실을 말이에요.
생각해보니 이런 이야기 한번도 어머니께 정답게 소곤거려 본 적이
없네요.
어머니 살아 계실 때 이런 이야기 들었다면 웃으며 제게 이런 말씀 해주셨을까요?
언제 네가 좋아하지 않는 계절이 있었냐고
말이에요.
그래요. 따지고 보면 제가 안 좋아하는 계절은 없는 것 같아요.
너무도 보고싶은 어머니,
여름날, 더워서 하늘 바라보기도 쉽지 않다는 누군가의 말도
어디론가 산산이 부서져버린 지
오래예요.
어머니, 어제 9월 11일이 무슨 날인지 혹 기억하세요?
만 14년 전, 막내 딸 숙이가 드디어 한 아이의 엄마가 된
날이잖아요.
많은 시간이 흘렀지만 그 날의 기억을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의 흥분을 가라앉히기가 어려워요.
어머니, 알고 계셨어요?
마취에서 깨어나 통증을 느낀 순간부터
어머니 당신이 너무도 그리워 소리 없는 눈물 참 많이도 흘렸다는
걸...
새 생명을 통해 부모가 된 기쁨은
한남자의 완전한 아내가 된 기쁨과 또 다른 가슴 벅참이 있었어요.
행복,
기쁨, 설렘, 감동...
그 어떤 말로도 그 순간의 제 마음을 설명할 수 있는 단어는 없었어요.
그만큼 생명의 경이는 저로 하여금
또 다른 세계를 꿈꾸게 했어요.
며칠 전, 신애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입었던 배내 저고리를 꺼내
깨끗하게 삶아서 가을햇살에 보송보송하게 말렸어요.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입은 배내 저고리를 아직도 보관하는 것은
옷 하나에도 보이지 않는 정성을 다하면
옷의 주인인 아이가 틀림없이
훌륭하게 자란다는 속설 때문만은 아니에요.
해마다 일년에 두 차례 두 아이의 배내 저고리를 꺼내
뜨거운 불에 폭폭 삶고 햇볕에 말려
늘 새것처럼 만드는 이유는
옷의 변색을 막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자칫 흐트러지기 쉬운 어머니로서의 마음을 바로 잡기
위해서예요.
신애 생일인 어제 아침, 아이 생일 상 차리면서
어머니께서 정성 들여 준비한 생일 상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어린 시절의 저와
만났어요.
지금도 그 때 생각만 하면 가슴이 너무도 따스해서 말문이 막히곤 해요.
제 생일 하루전날이 오빠생일이라 대충 묻어가도 그럴
수 있겠다 생각할 수 있으련만
어머니 당신은 생일날 잘 먹어야 일년 동안 배고프지 않고 뭐든 술술 잘 풀린다며
찰밥에 미역국,
윤기 나는 갈치에 직접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더욱 맛있는 구운 김 등
이것저것 정성껏 생일 상을 차려주셨지요.
어머니, 오랫동안 소식 없어서 애태우셨나요?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참, 둘째 언니 큰아들 민이가 6월에
장가갔어요.
각시는 음대를 나왔는데 전공에서 배운 건 아이들 과외선생으로 뛰고
직업은 청소년 상담사로 일하고 있대요.
민이도
결혼 후 다니던 직장 그만 두고 금융계통에 취직해 열심히 다니고요.
사랑하는 어머니,
올 가을은 누구라도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잠들지 못한 이 밤에 그리운 시가 되고 노래가 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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