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며 과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홀로 살 수 없고 여럿이 어울려서 함께 살아간다는 뜻으로 사회적인 동물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뿌리내린 나무처럼 지상에 두 발을 딛고 사는 동안 사람들은 저마다 나무를 키워내는 햇살과 바람이 되어 그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끼치며 삽니다. 어떤 이는 나무를 뿌리째 흔드는 바람이 되어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대고 어떤 이는 나무를 더 살찌우게 하는 햇살이 되어 한사람의 삶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나를 변화시킨 타인의 한마디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을 떠나고자 합니다. 기억의 더듬이를 정직하게 세워야만 순조롭게 여행을 마칠 수 있겠지만 여행을 하는 동안 더러 잊고 산 옥희, 미선, 숙자, 철수, 현진, 민호, 수희 등... 셀 수 없이 많은 이름들과도 만날 것이며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생각나는 얼굴들과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는 사이 내 자신이 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하여 아프게 한 일은 없는지 살피게 될 것이고 나라는 사람이 그 누군가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하여 진심 어린 감사의 말을 들은 적이 있는지에 대해서도 떠올려 볼 것입니다.
자아의식이 높아지고 구속이나 간섭을 싫어해 이유 없는 반항을 하기 쉬운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에 나를 바로 세운 말은 돌아가시기 며칠 전, 아버지께서 하신 "넌 야무지고 똑똑하니까 뭐든지 잘 할 수 있을 거야. 널 믿어..."였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집을 나와 자취생활을 하고 있었기에 특별한 일이 없는 한 매주 토요일이면 집에 갔다가 다음날인 일요일 오후에 자취집으로 돌아오곤 했는데 어머니가 챙겨주신 반찬을 들고 집을 나설 때 아픈 몸을 이끌고 나오시며 하신 그 말이 아버지의 마지막 말이 될 줄은 정녕 몰랐지만 게을러지고 흐트러지고 싶은 마음이 생기다가도 "널 믿어..."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불현듯 떠오르면 찬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번쩍 들곤 했습니다.
수녀가 되겠다며 언제쯤 가겠노라 달랑 편지 한 장 띄우고 찾아간, 12월 끝자락에서 신정연휴까지 지낸 충청도 모 성당에서 안 ○○○ 수녀님이 나를 둘러싼 소중한 배경을 잊지 않게 일깨워주신 "이렇게 나이를 먹어서도 아직도 우리 부모님은 대문을 잠그지 않고 주무셔. 일 년 후에도 같은 마음이면 그때 다시 찾아와..."그 말은 그곳에서 돌아온 후 오늘을 살아내고 있는 지금까지 내가 어떤 일을 결정하기에 앞서 가족의 울타리를 잊지 않는 사람이 되게 했고 한발 물러서 주변을 살피는 따스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게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습니다. 대학 졸업을 하던 그 해 겨울, 다시 찾은 그곳에서 그 누구도 수녀님의 소식을 아는 이 없어 고마움과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안고 내 사는 곳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 시절 나와 수녀님이 나누었던 대화와 그곳 성당식구들과 함께 떠났던 삽교호 풍경과 성당에서 일하는 내 나이 또래 여자아이와 함께 간 극장모습 등 어느 것 하나 잊혀 지지 않고 그 모습 그대로 존재합니다. 그렇게 흐르는 세월 속에 사람은 가고 없어도 추억은 남는 것인가 봅니다.
삼십대에 나를 울컥 눈물짓도록 감동하게 한 말은 남편이 시댁식구들 모두 모인 자리에서 다음 생에도 날 선택하겠다는 말을 했을 때였습니다. 그 말을 한 배경에는 그 만큼 나라는 사람이 그 사람에게 소중한 사람이니 알아서 행동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었음을 알기에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같아서는 다른 사람 눈치 볼 것 없이 오○○!...하면서 와락 껴안고 싶었지만 시댁식구들 앞이라 표현도 못하고 속으로만 싱글벙글... 그날 이후 온통 그 남자의 장점만 보일 정도로 내 삶의 중심에는 항상 믿음직스럽고 사랑스러운 그가 있었습니다. 그 때 처음 알았습니다. 여자의 마음 안에는 누군가를 온전히 담을 수 있는 방은 하나밖에 없다는 걸 말입니다.
사십대를 살고 있는 지금은 타인으로부터 들은 말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이 뭘까 하고 즐거운 고민을 하기에는 아직 때가 이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달려온 시간보다 달려야 할 시간이 너무도 많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먼 훗날 지나간 사십대를 회상할 때면 어느 한순간 내게도 그런 일이 있었지 라고 기억하고 싶은 일이 있기는 합니다. 순한 듯 느껴지지만 어딘지 매서운 구석이 있을 것 같은 그 남자, 그 남자가 남긴 "갸우뚱~ 나를 보고 웃고 있는 그녀. 당신을 형법 제 35조 절도죄로 고발합니다. 내 마음을 훔쳐간 ..." 짧은 메모 속에 담긴 그 말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변화시킬 만큼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둥둥 북소리를 울려 퍼지게 하지는 못했어도 철들고 싶지 않은 내 마음에 싸한 박하 향기로 남는 건 나이가 아무리 들어도 여자는 여자라는 말밖에 달리 설명 할 말이 없습니다.
나를 변화시킨 타인의 한마디는 무엇이었는지에 대해 지나온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여행하는 동안 내 인생을 십년주기로 묶어 이야기 할 때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깊이 내 마음 속으로 스며들어 나를 변화시킨 말은 분명 존재했지만 그래도 어떤 상황에서든 사랑해, 고마워, 미안해, 널 믿어, 너라면 할 수 있어... 이런 말들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를 다시 한 번 깊이 느끼게 되었습니다.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듯이 말은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두 팔 벌리고 하늘을 보고 사는 동안 그 누군가에게 용기를 북돋워주는 말 한마디, 칭찬을 아끼지 않는 한마디 말에 인색하지 맙시다. 좋은 말은 상대를 변화시키기도 하지만 덩달아 자신을 기분 좋게 하기도 한다는 걸 알고 있는 당신에게 오늘은 마주 보고 이야기하듯 묻고만 싶어집니다. 당신을 변화시킨 한마디는 무엇입니까?
2006년 11월 01일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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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촌의 작은 뜨락을 스치는 님들에게 감히 이야기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저마다 자신의 인생에 주인공이 되어
삶이란 큰 무대 위를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싶어 하지만
생각과 현실 사이의 벽은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높고 두텁기에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 왔다고 생각한 사람들조차도
어느 순간은 모든 것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막연한 일탈을 꿈꾸기도 합니다.
그러한 때, 그대 자신을 변화시킨 그 누군가의 말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다시 한 번 가슴속에 웅크리고 있는 날개를 활짝 펼칠 기회를,
여유를, 자신감을 스스로에게 주십시오.
나라면 할 수 있어, 이제껏 잘 해왔잖아, 뭘 망설여 다시 한 번 해 보는 거야,
이 정도로 좌절 할 내가 아니지...
그 어떤 말이라도 좋습니다.
당신을 꿈꾸게 하고 일으켜 세우는 말을
타인에게 이야기하듯 스스로에게 부드럽게 속삭여 주십시오.
그리고는 큰 소리로 웃는 연습을 하십시오.
웃음만큼 몸과 정신을 건강하게 하는 보약이 없다는 말이 있듯이 큰 소리로 웃다 보면
자신 앞에 있는 그 어떤 장애물도 절반은 넘은 기분이 들 것입니다.
오늘은 11월 첫날입니다.
인디언들은 11월 달을 ‘아직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나지 않은 달’이라고 했습니다.
그 말은 아직도, 여전히 뭔가를 하기에 늦지 않다는 말도 된다는 걸...
모쪼록 아름다운 11월이 되었으면 합니다.
모든 님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십시오.
시인촌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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