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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낮은 읊조림

느닷없이 Love Is Blue가 듣고 싶은 밤 - 이희숙

by 시인촌 2006. 11. 8.

도심 가운데 있으면서도 앞산 아래 위치한 우리 집,
우리 집 풍경 중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은 
대덕산, 산성산, 비파산, 청룡산, 과차산 등 골짜기마다 다른 이름들이 있지만 
앞산공원이 있다고 하여 대구 시민들이 앞산이라고 부르는, 
앞산이 훤히 바라다 보이는 4층 테라스다. 
그 중에서도 우리 네 식구 다 앉을 수 있는 공원에서나 볼 수 있는 긴 벤치는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커피 한 잔 들고 앉았노라면 신선이 부럽지가 않다. 
흘러가는 구름이며 눈부신 햇살, 스치는 바람, 낮달, 밤하늘에 무수히 떠 있는 별, 
크고 작은 화분들과 정원을 생기 넘치게 하는 갖가지 나무와 꽃들...
어느 것 하나 내 마음에 미소를, 웃음을 선물하지 않는 것은 없다.

조금 전, 쌀쌀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밖으로 나가 
내가 좋아하는 벤치에 앉아 어둠 속에서만 느낄 수 있는 
어떤 친밀감과 무언의 대화를 나누었다.
말이 없어도 말이 되는 그 순간, 
몸에 와 닿는 찬 기운이 마치 운동을 열심히 한 후 사우나를 하고 
다시 찬물로 온몸을 헹구어 낸 느낌과 비슷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불러들인다고 했던가, 
느닷없이 오늘 밤 내가 즐겨 찾는 벤치에서 본 가을을 색깔로 표현한다면 
Blue 라고 말하고 싶다는 조금은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혔다.
덕분에 늦가을이면 더 자주 듣곤 했던 ‘Love Is Blue’가 듣고 싶어져
밤하늘을 반짝이는 별들처럼 내 가슴에 영롱한 별들로 떠오르는 
어머니, 아버지, 언니, 오빠, 친구들...
그들의 모습과 말투, 걸음걸이, 웃음소리까지 떠올리며 
빙그레 미소짓곤 하던 것도 잊고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후다닥 사색의 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그래서 지금 나는 침실로 가야한다는 생각도 잊은 채, 
1925년 프랑스 출생으로 2006년 11월 03일에 영면(永眠)한
Paul Mauriat(폴 모리아)의 ‘Love Is Blue’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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