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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을 지우는 카페 - 희야 이희숙 지난가을 각중에 찾아온 불청객은부실한 대접에도 구석진 방에 앉아 말이 없다밀어내려는 자와 눌러앉으려는 자 사이에싸움이 길어질수록 구경꾼의 주머니는 두둑하다 씹는 자유를 저당 잡힌 턱은먹는 즐거움마저 압류당한 채 눈치만 살피고싸움의 최대수혜자인 구경꾼은 스트레스를 줄이고멍 때리는 시간을 많이 가지라는 처방전을 내놓지만어쩐지 나의 봄은 눈치 없는 애인처럼 머뭇거리고완치 불가 판정을 받은 턱관절 디스크는대놓고 거드름을 피운다 이럴 어째, 진작 어르고 달래서 구워삶아볼걸손이 발이 되도록 싹싹 빌어나 볼걸이 일을 어쩐다 정말 어쩐다지금이라도 보채지 말고 종종 멍 때리는 연습을 하면못 이기는 척 아니 온 듯 돌아가려나그러면 나는 막 미치도록 좋아서 아담한 카페 하나 열어야지작명소에 맡기지 않고 철학적으로 지어야지 .. 2017. 4. 4.
아이에게 배우다 - 희야 이희숙 현관에 들어서자 짖어대는 개평화는 깨져버렸다개의 이름을 부르며적이 아님을 증명하려 애써보지만개의 입장에서는 침범한 자에게 자비란 없다짖어대는 소리가 박힐수록시간은 멈추고 긴장은 절정을 향해 달린다 엄마 치맛자락에 숨어있던 아이“짖게 해서 미안해”개 처지에서 보면 원인 제공은 사람이니아이는 받아들이며상대에게 다가가는 법을 이해한 전략가요같은 편마저 무장해제시킨 영웅이다  2017년 03월 - 喜也 이희숙 2017. 4. 1.
깊고 낮은 읊조림(일백 마흔셋) - 이희숙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이라면 국내외 어디든 가리지 않고 좋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사진과 가까워졌어요. 아직은 사진 찍는 걸 즐기는 수준이라 많이 어설프고 부족하지만 2015년 제16회 전국문화사진 공모전에 출품한 4점 (가작 1점, 특선 2점, 입선 1점)이 좋은 결과를 얻어 초대작가에 이.. 2015. 10. 22.
아모르 파티(Amor Fati) 너의 운명을 사랑하라. 머릿속에서, 마음속에서 셀 수 없이 소용돌이쳤던 울림을 단 한 줄의 반성도 없이 아무렇지 않은 듯 외면해버린 시간이 몇 해가 지났는지 애써 기억하려고 하지 않겠다. 다만, 언제나 그랬듯이 감당할 수 없는 줄 알면서도 어린아이 같은 호기심으로, 두려움 없는 순수함으로 내가 아직 만.. 2015. 10. 22.
그 많던 영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 희야 이희숙 칠팔십 년대 중고등학교에 다녔던학창시절을 떠올릴 때면 생각나는 얼굴더 많은 승차권을 회수하기 위해 목청껏 오라이를 외치던우리가 버스 안내양이라고 불렀던 그 많던 영자들은 어디로 갔을까? 여자 팔자 뒤웅박 팔자 라고자수성가한 남편 만나백화점으로 헬스장으로 문화센터로한바탕 신나는 꿈을 꾸고 있을까? 삼시 밥 차리다 말고올 봄에는 남들 다 가는 꽃구경도 놓쳤다며순한 신랑 바가지 긁는 재미로 살고 있을까? 남편 복 없는 년은 자식 복도 없다며그토록 벗어나고 싶었던 가장의 무게를거북등처럼 갈라 터진 손에 싣고오늘도 새벽시장으로 달려가고 있을까? 어느 한 시절누군가의 아픈 손가락이요어떤 이의 꿈이었던그 많던 영자들은 어디로 갔을까?위대한 영자의 전성시대는 끝이 났는데.   2015년 03월 - 喜也 李姬淑 2015. 4. 3.
망각곡선 - 희야 이희숙 너에게로 향했던 수많은 길도 하나둘 사라졌다 네 안에 무수한 바람이 일고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도 너는 끝내 흔들리지 말아야 했다 어딘가에 너를 기억하는 단 한 사람이 숨 쉬는 그 날까지 너는 죽어도 죽은 게 아님을 아니 아니다 사랑을 생각하고 그리워하는 동안에도 매 순간 너.. 2014. 12.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