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간이역

그 여자 밥 짓는 여자 - 희야 이희숙

시인촌 2014. 3. 31. 21:54

그 여자 밥 짓는 여자

중학교 입학하던 해

읍내에서 자취했다던 여자

부엌살림과 공개 연애한 지 삼십 년도 더 된 여자

쌓인 내공으로 치자면

입 다문 계집처럼 좀체 웃을 줄 모르던 목련도

방실방실 웃게 할 수 있지만

밥 짓는 일이 세상에서 제일 어렵다는 여자

손에 물 마를 날 없는 여자

채소와 육류 사이를 오가며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를 즐기는 여자

숨겨둔 정부처럼 좋아하는 해산물을

은근슬쩍 장바구니에 쏙 담는 여자

365일 세끼 밥에게서 벗어나지 못하지만

사랑과 정성으로 버무린 음식이 제맛을 내는 것처럼

인생도 꿈꾸고 노력하고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끝까지 웃을 수 있다는 걸 아는 여자

그 여자 밥 짓는 여자

 

 

 

2014년 03월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