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향기

합격을 축하해 - 이희숙

시인촌 2005. 3. 31. 17:11

 
 
며칠 전, 길을 걷다 받은 한 통의 전화로 인해
엄마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몰라.
남부교육청에서 실시한 수학영재시험에
1, 2차 모두 합격하여 최종합격자 명단에
우리 아들이 들어갔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엄마는 칭찬을 받은 아이처럼 신이 나서 아빠에게 전화를 했지.
 
"우리 재석이가 수학영재시험에 합격을 했대..."
엄마의 전화를 받은 아빠도 덩달아 신이 났는지
기분 좋은 목소리로 
"약속을 지켰으니 돈 좀 써야겠네..."하셨지.
그러면서 엄마더러 집에 도착하면
인터넷으로 다시 한번 확인하라는 당부를 잊지 않았지.

매사에 건강한 신중함을 잃지 않는 아빠를 보며
엄마는 종종 존경이라는 단어를 생각해내곤 해.
아빠의 신중함은 원칙이 몸에 벤 습성 덕분이기도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게 저울질하는 것과는 다른
여유에서 오는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엄마는 아빠의 건강한 신중함을
가까이에서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아들, 축하해.
어느새 이렇게 자라 가족의 기쁨이 되고 행복이 되어 준 너를 생각하면
솔직히 고마움을 느끼는 것 이상으로 미안함도 함께 느낀다.

재석이가 두 돌을 넘긴 어느 가을날
한양대병원 중환자실에 누워 계신 네 할머니를 돌보느라
누나와 아빠를 대구에 두고 너와 함께 서울 네 할아버지 댁으로 올라온 엄마는
24시간 병원을 지켜야했기에 어린 너를 네 고모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지.
 
엄마의 정성과 아빠의 기도도 하늘을 감동시키지 못했는지
결국 네 할머니는 오십 여섯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가족과 영영 이별을 하고 말았고
그 후 한달 가량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우리 집이 있는 대구로 내려온 그 다음날
어린 네 몸은 견디지 못하고 그만 대구카톨릭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어
할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놀라고 슬픈 가족들 가슴을
또 한번 철렁 쓸어 내리게 했지. 
재석이가 일주일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엄마는 참 많은 걸 느꼈어.
무엇보다 가족의 소중함에 대해서...
 
 
아들, 네가 평소에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영재시험에 합격하면 가능하게 해주겠노라고 약속했던 것을
엄마, 아빠가 기분 좋게 허락할 수 있게 해주어서 고마워.
 
엄마가 선물한 게임CD는 마음에 들었니?
아빠가 선물한 과학상자는 조립하는데 어렵지 않니?
약속대로 일주일 용돈도 인상해주었고
잘했다는 칭찬의 뜻으로 특별보너스도 주었으니 기분 좋지?
어때?
학교숙제가 있을 때를 제외한 컴퓨터 시간을 
일주일에 40분으로 제한했던 것을 20분 더 늘여
매주 한시간으로 하는데 합의를 했으니
컴퓨터 게임을 하고 싶다는 아쉬움은 어느 정도 줄어들었지?
 
 
아들, 네가 수학영재시험에 합격해서 기쁘지만
한편으로는 너희 학교에서 함께 1차 시험에  합격했던
너 이외의 두 명의 어린이가 함께 기쁨을 누리지 못한 사실이 아쉽다.
아들, 잊지마.
네가 너희 학교에서 유일한 수학영재에 합격했다는 사실을...
이 말은 너에게 자부심을 느껴도 좋다는 말과 함께
다음해에도 여전히 영재시험에 합격할 수 있도록 노력하기를 바란다는
부탁의 말이라는 것도 기억해주기를 바래.
 
 
수학과 과학과목에 유난히 흥미로움을 느끼는 아들 재석아,
4월 중순에 과학조립대회에 참가한다고
틈만 나면 아빠가 사주신 과학상자와 단짝이 되어
집중하는 네 모습을 보면
엄마는 어린 너에게서 가끔 미래의 과학자가 된 네 모습을 상상하곤 해.
 
 
아직 공문이 학교로 전달되지 않아서
정확한 일정과 영재수업을 받는 장소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4월 중순부터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해서
영재수업을 받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그동안 네가 공부했던 올림피아드 수학이나 수학경시대회에 나오는 문제보다
어쩌면 더 어려울지도 모르지만 좀 더 수준 높은 공부를 할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다는 생각에 엄마는 솔직히 기대돼. 
 
 
사랑하는 아들,
태권도를 시작하고 나서부터 넌 확실히 건강해졌어.
초등학교 1학년 때까지 하늘거리는 코스모스처럼 여려 보이는 네 모습이
참 안쓰러워 보여 알게 모르게 신경 많이 썼는데 
11살이 된 지금은 엄마인 내가 오히려 살 빼라는 말을 할 정도로
튼튼하게 자라주어서 얼마나 고마운지 몰라.

 
엄마가 자주 이야기하는 것 중에
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생각을 먼저 가지라는 말을
오늘도 빠트리지 않고 해야 할 것 같구나.
그리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노력하면
그 어떤 것도 원하는 방향대로 만들어 갈 수 있다는 말도...
 

아들, 사랑한다.
오늘 하루도 너의 시간이 즐거운 일들로 가득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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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말과 글로서 다 표현해내지 못한 엄마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