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향기
말 안 해도 알지.
시인촌
2005. 5. 4. 18:36
어제와 오늘 이틀에 걸쳐 친 학교시험지를 가지고 학원으로 간 너는 조금 전 내 휴대폰에 문자를 날렸지. "엄마, 나 평균 몇 점 밖에 안 돼..." 짧은 몇 자로 요약한 문자를 엄마인 내게 보낼 때 네 심정이 어땠을 것 같은지 말하지 않아도 나 알 것 같아.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알고 있다고 해야 옳은 표현일거야. 솔직히 내 딸이지만 엄마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지금의 네 학창시절인 그때와 비교를 한다면 딸인 네가 엄마인 나보다 한 수 더 위인 것만은 틀림없어. 그런데도 엄마인 나는 너한테 왜 자꾸만 많은 것을 요구하게 되는지 몰라. 이번 중학교 첫 시험에서 어떤 과목도 실수 없이 만점 받았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넌지시 너에게 들켰던 건 너라면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어. 그렇지만 꼭 그런 결과를 내 자신과 가족들에게 선물처럼 건 내주기를 바란 건 아니었어. 그런데도 네 문자를 접한 순간 수고했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어. 교과서와 학원에서 공부한 시험지를 분석해 본 엄마의 충고와 학원수학선생님이 혼합계산 풀 때 모든 과정이 다 맞으면서도 정답을 쓸 때 꼭 한번씩 실수를 하는 너를 보고 그것만 실수하지 않으면 수학은 백점 맞을 수 있다고 걱정했던 문제를 결국 피해가지 못한 네가 그 순간만큼은 정말 와락 끌어안고 싶을 정도로 어여쁘지는 않았거든. 온전히 라고 말 할 수 없지만 네 교과서내용을 거의 파악하고 있는 엄마와 한문이나 다른 분야에서 여러모로 네게 힘이 되고 도움을 주는 아빠를 만난 것은 분명 공부하기에 더 할 수 없이 좋은 환경일텐데 하는 생각과 함께... 언젠가 엄마가 그랬지. 실수도 실력이니 과정이 중요하지만 결과도 과정 못지 않게 중요하다고... 올 만점이 날아갔으니 원했던 미국여행은 할 수 없게 되었지만 다음 기회에도 약속은 유효하다는 걸 기억하고 지금처럼 우리 뭐든 열심히 하는 가슴이 살아있는 사람이 되자. 그러고 보니 내일이 어린이 날이네. 이제 중학교 1학년이 되었으니 어린이는 아니지만 아직도 만 열두 살인 너를 보면 엄마는 여전히 챙겨주어야 할 것이 많음을 느끼곤 해. 엄마는 말이야. 놀 때 놀고 공부 할 때 공부하는 사람이 좋더라. 확실히 엄마는 네 말대로 욕심이 너무 많은 사람인가 봐. 미안하다. 좋은 결과 얻었는데도 수고했다는 말을 바로 해주지 못해서... 말 안 해도 알지. 진작부터 수고했다는 말과 얼마나 너를 사랑하는지를 말하고 싶어했다는 걸...... 페리요정 너에게 아름다운 미래가 되고 싶은 엄마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