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낮은 읊조림

읊조림(일흔 하나) - 이희숙

시인촌 2005. 9. 28. 01:22

어떤 일이든 내게 주어진 일이라면 까다롭기가 여간 아닌 나는 
진돗개 두 마리에 수십 종의 나무와 수십 가지 꽃들과 잔디를 심어 놓은 정원과 
각각의 층 평수는 다르지만 1층 사무실을 제외한 2~5층을 주거용도로 
네 명인 우리가족이 다 사용하고 있기에 
일상생활에서도 여느 주부들보다 하루 집안일 하는데 투자하는 시간이 
두 세배는 더 힘들고 시간 또한 많이 들지만 
피곤할 때나 바쁠 때만이라도 가끔 도우미를 쓰고 싶다는 내 생각과 달리 
누군가 집에 와서 일하는 걸 원치 않는 가족들로 인해 
조금만 시간관리에 게으름을 피워도 늦은 밤 시간까지 
그 날 내가 끝마쳐야 할 일은 쉬 끝나지 않는 게 그리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오늘도 가족들 옷 다림질이며 아이들 공부한 문제지 정답확인 하느라 
밤 12시를 넘긴 시간까지 시간과의 전쟁을 치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나라는 여자는 별종이다. 
잠자는 시간은 다른 여느 사람들에 비해 훨씬 적고 
움직이는 시간은 그와 반대로 훨씬 더 많은데 
남편과의 몸 사랑을 하고 나면 거짓말 같이 피곤이 말끔히 사라진다. 
언젠가부터 이런 내 몸 리듬을 알아버린 나는 
아무리 깊은 밤이라도 몸 사랑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내게 있어서 남편과의 몸 사랑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를 너머
부부간의 애정확인임과 동시에  
온몸의 피로를 사라지게 하는 마법의 약이며 
만나 부딪혀야 할 시간들을 싱싱하게 살아 움직이게 하는 
행복한 에너지원이 된다.  
 
9월 들어 일주일에 두 번 영어회화수업이 저녁에 있어 더 바빠진 탓에 
오랫동안 비워둔 블로그  
낯선 사람의 블로그에 들어선 느낌 마냥 아주 낯설다. 
그 낯설음에 내 것이라는 흔적을 찾고 싶은 사람처럼 
블로그 관리하기로 들어가 여기저기 눌러보았다.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발견을 했다. 
통계를 누르면 ‘통합검색어’라는 기능이 있는데 
통합검색어통계 어제, 최근 1주, 최근1개월 그 기능을 순서대로 눌러보았다.
"Daum 통합검색에서 검색한 후, 
회원님의 블로그에 들어온 검색어를 보여줍니다."라는 바로 아래에 위치한...
 
최근 1주간을 누르니 내 눈을 의심할 만한 재미있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검색어 (최근 1주) 
횟수 
사랑중독
 217회
노블카운티
 75회
맘마미아
35회
러브오브시베리아
 25회
섹소폰나라
 18회
.
.
.
이 외에도 다양한 검색어를 통해 내 공간에 들어온 사람들이 1주일간  
놀랍게도 수 백 명이 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검색어 통계를 보고 대한민국을 인터넷공화국이라고 떠드는 소리가 
괜히 나온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순간 스치듯 떠올렸다.  
정작 그동안 나는 바쁜 일들로 인해 내 공간을 거의 방치 상태로 두었는데
주인은 오 간데 없고 사립문만 열린 집에 
길을 가다 잠시 쉬어 갈 요량으로 드나든 나그네들이 예상밖에 많았다는 사실은  
인터넷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인정하기에 앞서   
사랑하기 좋은 계절, 
가을이 정녕 우리들 마음 속으로 깊숙이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을 
자연스레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굳이 1주일간 검색어를 통해 내 블로그로 들어온 낱말이  
사랑중독(217회)이라는 사실을 들먹이지 않고도 
가을은 결실의 계절인 풍요의 상징 너머 
지나간 사랑의 소식이 문득 궁금하고 
아직 만나지 못한 사랑이 기다려지는 계절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다.  
미치도록 아름다운 계절, 가을이 나를 흔들어대고 있다.
이 밤, 
내 가을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거울 같은 정직한 나에게 묻고 싶어지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