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낮은 읊조림
읊조림(아흔 넷) - 이희숙
시인촌
2006. 9. 27. 10:38
살면서 단 한번이라도 완전한 무장해제를 마음으로부터 한 적이 있는지 스스로에게 몇 번을 되물어도 대답은 언제나 없다 아니면 기억이 없다... 로 끝을 맺는다. 스스로를 완전 무장해제(武裝解除)하며 사는 이가 지구상에 몇이나 될까마는 아주 가끔 스스로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나 자신을 구속하는 요인들을 멀리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러나 요 며칠 바람결에 전해 오는 누군가의 삶을 바라 본 이후로 자의든 타이든 간에 스스로를 완전 무장해제 하는데 언제나 서툴렀던 이유가 결과적으로 얼마나 다행한 일이었는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나는 마음이 불편하다 못해 답답하다. 누군가 내게 상처를 준 이도 없는데 속절없이 가슴이 무너진다. 미처 가늠할 사이도 없이 대책 없는 아득함이 삽시간에 비좁은 혈관을 타고 멀미처럼 스멀스멀 기어오른다. 살면서 이토록 속절없이 가슴 무너지는 경험을 해 본 적 있는지... 똑똑한 여자이기보다 지혜로운 여자로 남기를 원했던 나인데 요 며칠 마음과 달리 쏟아지는 말, 말, 말들의 표류로 인해 마음 한구석 돌덩이를 얹어 놓은 것처럼 무겁고 불편하다. 이런 내 모습, 누구보다 내 자신이 견딜 수 없으니 금방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원래의 사랑스러운 내 모습을 찾겠지만 가을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어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위로하기에는 달콤 쌉싸름한 갈증이 너무 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