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와 남자는 친구가 될 수 없는가? - 이희숙
결혼 15년 차로 사는 동안 나와 남편 사이에 의견이 좀체 통일되지 않는 게 있다면 여자와 남자 사이에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나와 절대로 친구로 남을 수 없다는 남편의 생각이다. 동갑내기 부부인 우리는 이 문제만 나오면 자신의 생각을 상대방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애써 보지만 변하지 않는 상대의 생각만 확인할 뿐이다. 남자와 여자를 바라볼 때 성별로 구분하기보다 동시대를 사는 사람으로 보는 나에 비해 남자와 여자를 확실하게 구분하는 남편의 생각은 도저히 좁혀지지 않는다. 평소에는 별다른 생각이 없다가도 우연히 다른 친구를 통해 어린 시절 함께 놀았던 고향 친구나 초등학교 동창들 소식을 들을 때면 다들 그동안 어떻게 변했는지 한 번쯤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남녀 문제에 관한 한 너무도 보수적이어서 답답하기까지 한 남편의 고집을 딱 한 번이라도 좋으니 꺾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좋은 게 좋다고 결혼생활 동안 남편이 싫어하는 행동은 하지 않으려 노력해 왔기에 초등학교 시절, 부회장에 우등생이었던 나였지만 결혼 후 초등학교 동창회뿐만 아니라 어린 시절 함께 놀았던 고향 친구 모임에도 가 본 적이 없다.
여자와 남자는 절대로 친구가 될 수 없으니 동창회에 나가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것도 매스컴의 영향이 한몫했음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비록 드라마 속이지만 동창 몇 명만 만나도 첫사랑이 어쩌니 하면서 잊고 지냈던 감정을 떠올리고 설렘 그 이상의 묘한 상황을 만드니 걱정하는 마음을 알 것도 같다. 수년 전 평소 연락하던 여자친구를 통해 우리 집 전화번호를 알게 된 초등학교 남자동창이 전화를 받은 남편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밝히지 않고 희숙이 좀 바꿔달라는 일이 있었는데 기본을 무시한 행동은 그 후로 여자와 남자는 절대 친구가 될 수 없다는 남편의 생각을 확고하게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남편 말대로 전화를 건 이유와 자신을 알릴 수 있는 간략한 인사 정도만 했어도 동창회에 대한 생각이 부정적이지만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있다.
어제 오전, 내가 수영장에 있는 동안 수 차례 전화를 했지만 받지를 않자 급기야 전화받으라는 문자 메시지까지 보낸 초등학교 여자 동창을 통해 전해 들은 이번 주 토요일 모임에 갈지 말지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초등학교 시절 특별히 뛰어난 구석이라곤 없었던 아이가 K대학교 전자공학과 교수가 되어 작년에는 대통령상을 받더니 이번에도 일천 만원의 상금을 받았다며 친구들에게 한 턱 쏜다는 소식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 나는 시간적인 여유가 생긴다면 모임에 가겠노라 덜컥 약속부터 한 게 고민이다. 갈 기회가 생긴다면 남편에게 이야기할까 말까도 고민이다. 이 글을 읽는 이들 중에는 별 고민을 다 한다고 웃을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원하는 일이라면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는 남편이 유독 경계를 하는 부분이 동창회에 나가는 문제이다 보니 조심스러운 게 사실이다. 아무튼 남편이나 다른 이들에게 여전히 여자로 비칠 수 있는 지금의 나이가 즐겁다. 남편생각이 변하지 않는 한 여자와 남자는 정말로 친구가 될 수 없는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로 남아있지만 말이다.
2006년 12월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