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과향기
안과 밖 구별 없이 만나 서로 보듬을 수 있게 - 이희숙
시인촌
2004. 8. 15. 16:19
우리 집 제일 위층에 위치한 창고 문 생각나? 크고 작은 세 개의 여행용가방과 크리스마스트리랑 장식품, 그리고 아이스박스, 기타, 테니스라켓, 장구 등등이 들어있던 창고에 어떤 문을 달아주어야 좋을지 한참이나 고민했던... 말이 창고지 겨울이면 난방도 되는 그 공간을 여느 집 창고처럼 쇠나 철로 된 문은 결코 달아주고 싶지 않아 했던 내 마음... 문대신 큰 그림을 걸어볼까 이 궁리 저 궁리 참 많은 생각 떠올려 보았지만 생각 끝에 통풍이 잘되는 나무로 짠 문을 달아주기로 결정하고 나서 지금 보이는 저 문을 목수한테 부탁해서 짜 맞춘 거... 보기에도 밉지 않고 창고 안 물건도 숨을 쉴 수 있으니 정말 잘 선택한 것 같지. 몇 달 전, 창고 안에 들어 있던 물건 중 장구는 거실로 내려놓고 큰 상 하나는 내가 그림 그릴 때 사용하려고 사색의 방으로 옮겨놓았지만 아직도 주인의 따스한 손길을 기다리는 물건들이 생각보다 참 많더라. 당신을 기다리는 기타, 나를 기다리는 테니스라켓, 겨울이 오면 제일 먼저 아이들이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품 등등... 어디 그 뿐이겠어. 다가 올 계절이 멀면 멀수록 깊숙한 곳에 들어있는 물건들도 하루빨리 시간이 흘러 자신이 기쁜 용도로 사용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겠지. 오늘 저 문을 열고 창고 정리를 했어.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얌전히 서 있는 두 개의 난로를 보니 겨울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 35도를 오르내리는 여름날씨에 겨울을 떠올리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대. 뭐랄까? 설원으로 초대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창고 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각각의 물건을 어루만지면서 잠깐동안이었지만 잊고 있었던 지난 추억들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졌어. 마치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기분이었지. 각각의 이름에 부쳐진 사연을 기억해 내는 그 기분이 말이야.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 오늘 내가 열어 젖힌 문처럼 사람 마음도 안과 밖 구별 없이 만나 서로 보듬을 수 있게 활짝 열어주어야 한다는 생각... 결국 사람이나 사물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 관심을 주면 관심을 받은 만큼 기쁨을 되돌려준다는 거...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도 나 부자가 된 기분이야. 이 기분이면 뭐든지 다 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럴 때 나 뭘 해야지. 아, 그렇지. 이 느낌을 표현해야지. 고마워. 정말 고마워. 느낄 수 있게 해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