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문을 잃어버릴 만큼 그립습니다 - 이희숙
보고싶은 어머니,
입춘을 지나서인지 요 며칠 기온이 참으로 따스해요.
거리를 나서도 집안에 있어도 여기저기 봄기운을 느낄 수 있어
없던 힘도 생기는 듯 기분이 마냥 좋아요.
그 좋은 기분으로 어제와 오늘은 햇살 좋은 시간을 골라
시아버지 이부자리도 널고 집안곳곳 물 청소도 하고
봄 기분을 마음껏 느낀 하루였어요.
지난 주 일요일엔 가족 모두 큰숙모 팔순잔치에 다녀왔는데
마흔을 넘긴 나이에도 아직도 막내로 보이는지
만나는 친척 분들마다 아이 대하듯 어여삐 맞아주어
제 나이도 잊을 뻔했어요.
그 자리에 어머니도 계셨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어요.
그리운 어머니,
시간이 참으로 빨리 흘러가네요.
소식 전하지 못한 몇 달 동안 이런저런 일들이 일어났어요.
큰언니와 둘째 언니만 아무런 변화 없이 그대로지만
셋째언니는 살던 아파트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으로 이사를 했고
오빠는 외국본사로 들어오라는 회장의 제의를 거절하고
봄 될 때까지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있고
몸 여기저기 빨간 신호등이 켜진 저는
세 달째 약을 먹으며 수시로 검진 받으러 병원에 다니고 있어요.
그래도 걱정은 안 해요.
인생의 최고 스승으로 희망이라는 말을 가슴에 품고 산 어머니 자식이잖아요.
재석이는 남부교육청에서 뽑은 수학영재에 3년 연속 합격했고
신애는 모 재단에 속해있는 5개 중학교 아이들 중
영재라는 이름 하에 서른 명 남짓 뽑아 최상위 수업을 하고 있는데
민사고, 과학고, 특목고 수준이라 벅찬가봐요.
중2한테 중3 수학 최상위 단계와 고1 물리, 생물, 영어, 논술, 과학을 가르치는데
1교시 수업이 100분이라 아침 8시 30분부터 수업이 있는 날은 그야말로 강행군이라
다음 번엔 영재수업 안 받고 싶다고 할 정도로 힘든가봐요.
욕심 같아선 중학교 들어갈 때 꿈이었던 민사고는 아니어도 외고라도 갔으면 좋겠는데
방학동안에도 학교에 나가서 공부만 하니까 스트레스가 쌓이는지
절대로 특목고 가지 않겠대요.
그래서 지금껏 잘해왔으니까 잘하겠지 하고 믿고 지켜보기로 했어요.
오늘 저녁에는 식탁 위에 봄을 선물하고 싶어서
냉이 국과 돌나물오이무침을 했어요.
편식이 심한 아이들은 먹을 생각조차 하지 않겠지만
신랑은 향기가 좋다며 맛있게 먹겠죠.
식구들을 기다리는 동안 잠깐의 틈을 내어 어머니께 소식 전해요.
그리 멀지 않은 어느 날에 식구모두 아버지, 어머니 산소에 다녀 올까해요.
그 아래 들녘에서 봄나물도 캐고, 생각만으로도 벌써 즐거워지네요.
어머니,
어느 누가 그렇지 않겠냐 마는 지금껏 살면서
내 남편, 내 딸, 내 아들만은 생각하고 꿈꾸는 대로 이루어질 거라는
믿음에 한번도 그렇지 않다는 생각, 해본 적이 없어요.
그런 믿음이 우리 가족을 어제보다는 오늘, 오늘보다는 내일
더 강하고 더 멋지게 만들어 가는 거라고 생각도 하고요.
지켜봐 주세요.
우리 가족이 어떻게 노력하고 어떤 모습으로 나날이 성장하는지를...
아, 어머니!
올해도 여전히 천리향이 꽃망울을 터트렸어요.
향기가 어찌나 진하고 좋은지 눈물이 날 지경이에요.
아시죠?
지금 이 순간 말문을 잃어버릴 만큼 어머니 당신이 그립다는 사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