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읊조림53

읊조림(다섯) - 이희숙 실종하고 싶다는 마음은 어쩌면 가장 나를 아끼는 순간에 오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문득 해본다. 오늘 내 하루 중 그러한 순간이 있었다. 아지랑이처럼 아른거리는 그 무엇이 미치도록 나를 휘어 감는 그 순간에 눈 덮인 안데스산맥을 떠올리며 실종이라는 단어를 기억해냈다. 사라지고 싶다는 .. 2004. 1. 28.
읊조림(넷) - 이희숙 견고한 나를 언제 흔들어 놓을지 모르는 두려움의 정체 단정한 가운데 흐트러진 낯선 바람이 불어온다. 처음부터 내 안에 웅크리고 있었는지도 모를 예측 불가능한... 혹은 파격적인... 폭풍 속을 거닐고 있는 느낌... 어떠한 명분도 어떠한 이유도 필요치 않는 이 감정의 사치를 나는 결코 열정이라고 .. 2004. 1. 27.
읊조림(셋) - 이희숙 무심결에 침대에 걸터앉아 창 밖을 내다보았다. 산수유나무 가지 끝에 앉아 있던 새 한 마리가 빨갛게 익어 가는 열매를 부리로 쪼아대는 모습이 평화롭다 못해 외로워 보인다. 외로워 보이는 건 지금 이 순간 보이는 풍경이 아니라 풍경 속에 온전히 동화되지 못하고 서성대는 내 마음의 표식이다. 정.. 2004. 1. 27.
읊조림(둘) - 이희숙 오늘처럼 기온이 영하로 내려가는 차고 맑은 날씨에는 어김없이 하늘이 높고 푸르다. 저 하늘처럼 내 마음도 한결 더 높고 푸르렀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런 생각의 뿌리를 가만가만 더듬어보면 나는 아직도 내 안에서 살아 꿈틀거리는 꿈의 한 단면과 만난다. 아니, 아직도 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 2004. 1. 25.
읊조림(하나) - 이희숙 오늘 저녁 빈터를 헹구고 가는 바람이 내 영혼이라고 해도 그 바람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네 흘러가는 시간 속에 자연스레 고개 숙이는 저 갈대처럼... 다만 한가지 비바람에 제일 먼저 스러지는 갈대도 결코 무릎꿇는 일은 없다는 것을 위안처럼 여기며. 2003년 11월 15일 - 喜也 李姬淑 2004. 1.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