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고 낮은 읊조림
읊조림(열 둘) - 이희숙
시인촌
2004. 2. 27. 17:31
그리 긴 말은 하지 않지만 아주 가끔 내 안부가 궁금하면 예고 없이 전화를 걸어 날씨가 하도 좋아서... 비가 와서... 라는 말로 자신의 심리상태를 적당하게 노출시키는 사람, 그 사람에게서 어제 뜻밖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라는 사람이 예측불가능한 사람이라는... 마주보고 차 한 잔 할 수 없는 사람에게서 이런 말을 들을 때에는 정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내 안부가 궁금해 전화를 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는 그 당시의 내 상황에 대해서 전혀 알 길이 없는 그 사람의 입장에서 나를 바라보면 그렇게 생각 할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무슨 말끝에 덧붙인 파격적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멍하다 못해 순식간에 얼음처럼 차갑게 얼어버렸다. 수화기 너머 들려오는 그 사람 말에 아무렇지 않은 듯 몇 마디 말을 건 냈지만 그 순간 내 자신에게 당황하고 있었다. 성녀와 마녀 사이에서 적당하게 긴장하고 사는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들켜 버린 것 같은 기분... 이렇게 아주 가끔 나는 다른 사람을 통해 관찰자적인 입장에서 나 자신을 바라 볼 때가 있다. 지금 이 순간 나를 위해 변명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 혹여 라도 내 자신이 감지해 내지 못할 만큼 미세한 파도가 내 안에서 끊임없이 일렁이고 있다 해도 나는 그 파도를 잠재우며 살 이성적인 힘은 있는 사람이라고...... 2003년 11월 27일 - 喜也 李姬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