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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향기

오늘 나, 왜 이다지도 당신이 그립지 - 이희숙

by 시인촌 2005. 4. 20.

어제와 오늘 혼자 먹은 점심
정말 반사작용에 의한 습관처럼 먹었어.
내가 운동하고 돌아오거나 그림을 그리고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어
점심 식사를 하러 오는 당신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새삼 또 느끼면서...

 

그동안 바깥음식을 무지하게 싫어하는 당신이
사업상 꼭 함께 식사를 해야 할 손님이 아니면
가능한 집에서 식사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지켜보면서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점심만큼은 밖에서 해결하면 
내가 좀 더 자유로울 텐데 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두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많이 했는데
돌이켜보니 점심시간 마주보고 식사하며 차 한잔 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나를 평화스럽고 온유하게 만들었는지를 새삼 기억해내고는
당신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고마운 사람인지를
이 늦은 밤에 봄날 새잎 돋아나듯 새록새록 느끼게 되었어.


정말이지 대화가 없는 혼자만의 식탁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기분이란
관객 없는 텅 빈 객석을 바라보는 배우의 마음과도 같았어.

 

생각해보면 바깥에서 식사를 했으면 하고 생각한 날보다
집에 와서 함께 먹기를 바란 적이 몇 배 더 많았지만
외출에서 돌아와 서둘러 평상복으로 갈아입고는
주방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앞치마를 두르며
그 짧은 시간동안 매번 다르지만
아침에 먹은 음식을 다시 데우거나 끓이는 것 이외에도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두 세 가지 더 준비할 때면
나도 모르게 절로 행복해져서 콧노래가 흥얼거려졌었어.

 

어디 그 뿐이었겠어.
점심식사 준비가 다 되었는데도
당신모습이 얼른 내 시야에 나타나지 않으면
그때부터 나는 기다림에 목마른 사슴처럼
목을 길게 내빼고는 열어 둔 베란다 창문을 통해
언제쯤 오나 하고 몇 번이고 당신 모습과
눈에 익은 차를 찾느라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지.

 

오늘 하루종일 지방으로 대구근교로 바쁘게 움직이다 돌아온 당신이
피곤한지 여느 날보다 더 일찍 잠든 시간
나도 당신 팔에 안겨 일찍 잠들까 하다가
당신이 잠든 걸 확인하고 사색의 방으로 건너왔어.
문득, 당신에게 편지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열어둔 베란다 창 밖으로 보이는 전선줄에 매달린 물방울들이
불빛에 진주처럼 반짝거려
당신을 향한 내 눈길을 떠올리게 해 생각만으로도 지금 이 순간 
내 가슴과 얼굴은 새색시 볼처럼 발그스름하게 익어 가는 기분이야.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오늘 나, 왜 이다지도 당신이 그립지.
노랫말 가사처럼 당신이라는 사람은
보고있어도 보고싶고 보고있어도 또 보고싶은 그런 사람이야.
가까이 있어도 늘...

 

내 이름을 부를 때 이름인 이희숙과
당신이 지어 준 희야 라는 호 이외에는
어떠한 호칭도 심지어 여보 라는 호칭도 불러본 적 없는 당신이지만
휴대전화를 바꾸기 전,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선물한 전화기에 탁본처럼 새겨두었지.
오○○ 마누라 임자 있음이라는...
그때 기분이 참 묘했어.
딱히 적확한 표현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설렘과 아름다운 구속 사이에 내 자신이 놓여져 있는 기분이 들었어.
 
내 남편이지만 당신이라는 남자 참 사랑스럽고 고마운 사람이야.
내게 있어 당신 같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어.
내 나이또래 여성들이 생각하지 않는 파격적인 생각들을 많이 하고
고급스런 문화와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 내가 많이 벅찼을 텐데도 
당신이라는 사람은 만 십 사 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딱 두 번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했지.
희야는 재벌가에 태어났어야 했거나
부자한테 시집가야 했었는데...

 

그때 사실 많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고마웠어.
언젠가 당신이 말했듯이
나라는 여자는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복잡하고
복잡한 듯 하면서도 단순해.
내 외향 둘 다 강한 나라는 여자는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여자임에 틀림이 없는데
이런 여자를 잘 읽어 내려 중심 잘 잡게 해주어서...
 
다음 생에 태어나도 나를 선택하겠다는 표현을
시댁식구들 앞에서 주저 없이 말하는 당신  
정말이지 친정 식구들 말대로
나라는 여자 무슨 복이 이리도 많아
능력 있고 자상한 당신이라는 남자를 만났는지 몰라.

 

앞으로도 지금처럼,
아니 더 많이
당신을 아끼고 존중하고 믿어주고 격려해주고 사랑해줄게.

내 사랑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
잘 자...

 

 

 

둘도 없는 친구이자 애인노릇까지 기쁘게 소화해내고 싶은 사랑스런 아내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