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오늘 혼자 먹은 점심
정말 반사작용에 의한 습관처럼 먹었어.
내가 운동하고 돌아오거나 그림을 그리고 돌아오는 시간에 맞추어
점심 식사를 하러 오는 당신이 얼마나 고마운지를 새삼 또 느끼면서...
그동안 바깥음식을 무지하게 싫어하는 당신이
사업상 꼭 함께 식사를 해야 할 손님이 아니면
가능한 집에서 식사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 지켜보면서
드러내놓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점심만큼은 밖에서 해결하면
내가 좀 더 자유로울 텐데 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두 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많이 했는데
돌이켜보니 점심시간 마주보고 식사하며 차 한잔 할 수 있었던 그 시간들이
얼마나 나를 평화스럽고 온유하게 만들었는지를 새삼 기억해내고는
당신이 얼마나 사랑스럽고 고마운 사람인지를
이 늦은 밤에 봄날 새잎 돋아나듯 새록새록 느끼게 되었어.
정말이지 대화가 없는 혼자만의 식탁에 덩그러니 앉아 있는 기분이란
관객 없는 텅 빈 객석을 바라보는 배우의 마음과도 같았어.
생각해보면 바깥에서 식사를 했으면 하고 생각한 날보다
집에 와서 함께 먹기를 바란 적이 몇 배 더 많았지만
외출에서 돌아와 서둘러 평상복으로 갈아입고는
주방이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가 앞치마를 두르며
그 짧은 시간동안 매번 다르지만
아침에 먹은 음식을 다시 데우거나 끓이는 것 이외에도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들을 두 세 가지 더 준비할 때면
나도 모르게 절로 행복해져서 콧노래가 흥얼거려졌었어.
어디 그 뿐이었겠어.
점심식사 준비가 다 되었는데도
당신모습이 얼른 내 시야에 나타나지 않으면
그때부터 나는 기다림에 목마른 사슴처럼
목을 길게 내빼고는 열어 둔 베란다 창문을 통해
언제쯤 오나 하고 몇 번이고 당신 모습과
눈에 익은 차를 찾느라 이리저리 바쁘게 움직였지.
오늘 하루종일 지방으로 대구근교로 바쁘게 움직이다 돌아온 당신이
피곤한지 여느 날보다 더 일찍 잠든 시간
나도 당신 팔에 안겨 일찍 잠들까 하다가
당신이 잠든 걸 확인하고 사색의 방으로 건너왔어.
문득, 당신에게 편지가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열어둔 베란다 창 밖으로 보이는 전선줄에 매달린 물방울들이
불빛에 진주처럼 반짝거려
당신을 향한 내 눈길을 떠올리게 해 생각만으로도 지금 이 순간
내 가슴과 얼굴은 새색시 볼처럼 발그스름하게 익어 가는 기분이야.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면서 서로를 애틋하게 여기는 마음이 없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오늘 나, 왜 이다지도 당신이 그립지.
노랫말 가사처럼 당신이라는 사람은
보고있어도 보고싶고 보고있어도 또 보고싶은 그런 사람이야.
가까이 있어도 늘...
내 이름을 부를 때 이름인 이희숙과
당신이 지어 준 희야 라는 호 이외에는
어떠한 호칭도 심지어 여보 라는 호칭도 불러본 적 없는 당신이지만
휴대전화를 바꾸기 전,
나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선물한 전화기에 탁본처럼 새겨두었지.
오○○ 마누라 임자 있음이라는...
그때 기분이 참 묘했어.
딱히 적확한 표현을 찾기란 쉽지 않지만
설렘과 아름다운 구속 사이에 내 자신이 놓여져 있는 기분이 들었어.
내 남편이지만 당신이라는 남자 참 사랑스럽고 고마운 사람이야.
내게 있어 당신 같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또 있겠어.
내 나이또래 여성들이 생각하지 않는 파격적인 생각들을 많이 하고
고급스런 문화와 다양한 스포츠를 즐기는 내가 많이 벅찼을 텐데도
당신이라는 사람은 만 십 사 년이라는 세월을 살아오는 동안
딱 두 번 지나가는 말로 이렇게 말했지.
희야는 재벌가에 태어났어야 했거나
부자한테 시집가야 했었는데...
그때 사실 많이 미안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너무 고마웠어.
언젠가 당신이 말했듯이
나라는 여자는 단순한 것 같으면서도 복잡하고
복잡한 듯 하면서도 단순해.
내 외향 둘 다 강한 나라는 여자는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려운 여자임에 틀림이 없는데
이런 여자를 잘 읽어 내려 중심 잘 잡게 해주어서...
다음 생에 태어나도 나를 선택하겠다는 표현을
시댁식구들 앞에서 주저 없이 말하는 당신
정말이지 친정 식구들 말대로
나라는 여자 무슨 복이 이리도 많아
능력 있고 자상한 당신이라는 남자를 만났는지 몰라.
앞으로도 지금처럼,
아니 더 많이
당신을 아끼고 존중하고 믿어주고 격려해주고 사랑해줄게.
내 사랑
오늘 하루도 수고 많았어.
잘 자...
둘도 없는 친구이자 애인노릇까지 기쁘게 소화해내고 싶은 사랑스런 아내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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