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728 안쪽 너머 아름다운 것은오래 바라보지 않아도눈에 들어왔다 언젠가부터 이상하게도페인트 벗겨진 벽 틈으로 희미한 낙서가지우다만 동물처럼 걸터앉아 있다 비에 젖고 햇빛에 바랜 것들 가만히 바라보면무늬 사이로 그림이 생긴다 갈라진 틈 사이로 버려진 것들이를테면 찌그러진 냄비나 짝 잃은 신발 같은물건이라는 이름 대신 무엇으로 불리던 그 모서리마다 고여 있던 시간들 문득그것이 지나온 생을 생각한다 낡은 것은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라바닥을 건너온 생,저마다의 시간을 품고 있는 것 바깥으로 향하던 마음을 거두고이제야 낡은 것의 안쪽그 너머를 바라본다 2026년 10월 5일 喜也 이희숙 2026. 10. 5. 가을 가을에는 말없이 걸어도 좋고오래된 골목을 바라봐도 좋고대답 없는 사람에게 말을 걸어도 좋고잊었다고 생각했던 이름을 떠올려도 좋다 오래된 골목에는저녁 먹으라 부르던엄마의 목소리 들릴 것 같고 가로등 아래에는맞잡은 손 놓기 싫어한참을 서성이는젊은 연인들이 서 있을 것만 같다 가을하고 말하면누군가 등 뒤에서“응”하고대답해 줄 것만 같아 그냥 왠지 그래 2026년 9월 30일 - 喜也 이희숙 2026. 9. 30. 시간의 속내 담벼락 석류나무주먹만 한 얼굴들이때를 기다린다 도무지 그칠 줄 모르던 더위도한낮의 영광으로 그치고 저녁이면 부드럽고 시원한 바람사람들 사이로 손 내민다 짧은 생저 몸속 어딘가 뜨거운 것 하나제 생을 다할 날 기다리고 있다 익어간다는 것은달리던 걸음에멈출 준비를 하는 일 2026년 9월 - 喜也 이희숙 2026. 9. 21. 작은 틈 하나쯤 9월은 경계에 서 있는 달뜨거움과 서늘함 사이바쁨과 멈춤 사이 그리고 그 틈에 잠깐 앉아 있는 사람 아침부터 저녁까지 입에 달고 사는 말 "짬이 없어" 하지만 짬은 시간이 남아서가 아니라바쁜 하루 사이에서겨우 만들어내는 것 하늘을 한 번 올려다보고지나가는 바람을 느끼며내가 어디쯤 왔는지 잠깐 돌아보는 시간 행복은 아무리 바빠도해야 할 일들 사이에서나를 잊지 않고 챙기는 것 오늘, 지금, 바로 여기서 계절과 계절 사이처럼우리에게도 작은 틈 하나쯤... 2026년 9월 - 喜也 이희숙 2026. 9. 18. 그냥 걷는다 테라스에서 바라본 앞산은 푸르고 순환도로를 내달리는 자동차 소리는별일 없이 지나치고 건너편 집 문고리는오늘도 성난 목소리로바람과 맞선다 덜컹, 턱, 틱, 땅 햇살은 미루나무 잎사귀를 끌어안고 바다 같은 파란 하늘에듬성듬성 떠 있는 멍 자국 그 위에 내려앉는 음악 한 소절아무르강의 물결 눈 감으면도착지점이 어딘지도 모를 그곳에 가 닿아 길을 걷는다말없이 그냥 골목을 적시는 맛있는 냄새웃음소리 들린다 걸음을 멈추고다시 길을 걷는다 테라스에서 바라본 앞산은 여전히 푸르고순환도로의 바퀴 소리 아스라이 멀어진다 2026년 9월 - 喜也 이희숙 -------------------------------------------------------------------- 시작 노트 어제 오후,생각나는 대로, 느껴지는 .. 2026. 9. 17. 삼십 분 젊을 때는어디까지 가느냐가 중요했는데 이제는누구와 걷느냐가 더 중요하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뒤처지는 사람이 있으면앞서가던 사람이 기다린다 오늘도 별일 없이하루가 저물고우리는 나란히 걷는다 무슨 말을 했는지무슨 말을 하지 않았는지집으로 돌아오면 잘 기억나지 않지만 삼십 분 동안우리는 같은 길을 걸었다 2026년 9월 - 喜也 이희숙 2026. 9. 16. 이전 1 2 3 4 ··· 12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