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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11

추억이 바람처럼 길을 내며 지나간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종갓집은 덩그러니 빈집만 남아 있지만, 몇 번의 계절이 돌고 도는 동안에도 몇 그루의 나무와 야생화, 알뿌리 식물까지 용케도 살아 매년 꽃을 피운다. 부산에 사는 외아들인 오빠와 고향 근처 읍내에 사는 둘째 언니가 가끔 들러 청소도 하고 풀도 뽑고 나무도 손질한 덕분에 누군가 사는 것 같은 착각이 들곤 한다. 오래전 어느 여름날, 오 남매 모두 고향 집에 모였다. 배우자와 자식들까지 한자리에 모이니 19명 대식구다. 마당에 자리를 펴고 앉아 합천 한우와 흑돼지 잔치를 벌였다. 옆집에 사는 5촌 아재도 부르니 그야말로 어머니가 떠난 종갓집이 모처럼 활기차다. 여름이라고는 하지만 저녁이 되자 선선하다 못해 쌀쌀하기까지 하다. 동네에서 일찍이 기름보일러를 놓은 친정집은 식구가 없다는 이유로 .. 2021. 10. 24.
공유 - 이희숙 언젠가부터 내 명의로 된 집에 누군가 이사를 왔다 덜컥 가슴부터 무너져 내린다 달아나고 숨어 봐도 그는 그림자조차 놓치는 법이 없다 그와 나는 한 지붕 아래 산다 내가 꽃이 되면 그도 덩달아 꽃으로 피어나고 그가 출렁이는 강물이 되면 어느새 나도 강물로 흐르고 마는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우.. 2009. 7. 16.
외로움은 돌림병처럼 - 이희숙 탁자를 사이에 두고외롭다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동안술잔엔 그의 기억들이 쏟아낸 소식들로 붐볐다외롭다는 그가 기억의 창고에서 찾아낸 건은폐된 혹은 유배된 지난 시간만 존재한 건 아니었다뜨거운 그의 기억이 지구를 몇 바퀴 도는 동안이미 내 것이 아닌 철 지난 추억도 쏟아지고 있었다 누군가의 외로움을 깊숙이 들여다보는 일이내 속에 박힌 외로움을 빼어내는 것만큼이나찬란한 슬픔이란 걸그와 내가 공범이 되고서야 알게 되었다 외로움은 돌림병처럼 돌아 삽시간에 내게로 왔다  2007년 2월 - 喜也 李姬淑 2007. 2. 28.
추억에 관한 단상(斷想) - 이희숙 국어사전에서 추억이란 단어를 찾아보면 "추억(追憶) [명사][하다형 자동사·하다형 타동사] [되다형 자동사] 지나간 일을 돌이켜 생각함, 또는 그 생각. 추상(追想)."이라고 명시되어있다. 언젠가 나는 ‘감성적인 것들에 이유를 달다. ’라는 제목의 글을 쓰면서 "추억이란 한 잔의 슬픔.. 2006. 4. 20.
떠올릴 첫사랑에 대한 아련한 향수는 없을지라도 - 이희숙 내게도 첫사랑이 있었을까? 있었을 법도한데 도무지 기억을 해낼 수가 없다 첫사랑이 언제 찾아왔는지 누구랑 했는지... 첫사랑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사랑을 하기는 했는지... 칠월 초입에 들어선 어느 날, 초등학교 6학년인 딸이 저녁밥을 먹다말고 큰소리로 "엄마, 엄마 첫사랑은 누구야?" "갑자기 별.. 2004. 9. 3.
추억이라 부르는 그리움 하나 - 이희숙 오후에 아이들 데리고 집 근처에 있는 대학교에 단풍 주우러 갔습니다. 아직은 도심 한가운데까지 단풍이 곱게 물들기에는 너무도 제 욕심이 컸나 봅니다. 드물게 단풍이 든 나뭇잎을 바라보며 와~ 하고 감탄을 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내 어릴 적 생각이 물밀 듯이 밀려오는 것을 애써 감추며 한참.. 2004. 4.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