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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낮은 읊조림

읊조림(마흔 둘) - 이희숙

by 시인촌 2005. 4. 1.

만우절인 오늘 마흔을 넘긴 내 나이도 잊고
잠시 잠깐 불현듯 이런 생각을 해봤어.
오늘 같은 날
생각이 통하고 말이 통하는 사람에게
가장 자연스럽고도
상처가 되지 않는 거짓말을 해야 한다면
어떤 말이 좋을까 하고 말이야.

 

그런 생각에 한순간 사로잡혀 있던 내 마음은 
갑자기 풋풋한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간 듯
괜스레 분주해지기 시작했어.
참 이상하지.
왜 난 아직도 여전히
내가 푸른 스무 살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는 생각을 잊지 않고 있는 거지. 

 

내친김에 뭐 한다고
생각에 생각을 덧칠해서 급기야는 이런 생각까지 해봤어.
오늘 같은 날
그녀 혹은 그 남자를 짝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은근슬쩍 그 사람에게 고백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

 

고백을 받은 상대방이 너무 굳어있거나 불편해하며
우리 친구하기로 했잖아 하고 시선을 외면한다면
아무렇지 않은 듯
"진짜로 놀랐나 보네.
농담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네. 
만우절이라 한번 띄워 본 건데 진짜로 믿다니 순진하기는..."

 

그러면 이 말을 들은 상대방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겠지만
고백한 당사자는 조금은 씁쓸할 거야.
고백한 자신의 속마음을 들키지 않고 만우절을 이용해서
자연스럽게 감추었지만 
드러날 듯 말듯 흔들리는 모습조차도
더 이상 느끼게 해서도 보여주어서도 안 된다는 걸 알아 버렸기 때문에...

 

오후 4시를 가로지르는 시간,
내 안에서 깃털처럼 가볍게 일어서 턱까지 차 오른 생각들이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며
푸른 스무 살의 강을 건너
불혹이라는 현실로 돌아왔다.

 

사랑한다면 용감해져라
만우절인 오늘,

거짓말이라는 소스를 이용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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