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첫 주말 오후, 내가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냈고 팔순이 넘은 노모가 여전히 네 칸짜리 기와집을 품고 사는, 고향인 경상남도 합천군 합천읍을 향해 길을 나섰다. 식목일이 월요일이라 황금연휴를 즐기려는 나들이 인파와 성묘객들 때문에 도로는 평소보다 두 배가량 많은 차들로 남대구 톨게이트 못 미치는 곳에서부터 교통체증에 몸살을 앓고 있었다. 거북이처럼 느린 속도로 진행하고 있는 차량의 물결들을 무심히 바라보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평소 가족과 여행 중이거나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 때는 습관적으로 전화벨을 진동으로 해 두는데 여느 날과 달리 진동하는 걸 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 3월, 집에서 조금 먼 거리에 있는 입시학원에 다니게 된 아들 녀석이 학원친구한테서 선물 받은 햄스터가 이 십 여일 동안 우리 집 식구가 되어 애굣덩어리라는 애칭을 받을 정도로 사랑받다 원인도 모른 채 죽어 있는 것을 토요일이라 일찍 집으로 돌아온 아들 녀석에게 발견돼 우리 집은 순식간에 햄 토리(아이들이 지어 준 햄스터 이름)의 죽음만이 존재하는 것처럼 울먹이는 소리로 집안 공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아들 녀석과 함께 싸늘히 식은 햄 토리를 볕 좋은 정원 한쪽에 묻어 주고도 다른 날과 달리 아이들이 학교 갈 무렵에도 자는 햄토리를 보고 “오늘은 늦잠자네.” 했던 내 행동이 못내 마음에 걸려 그때 잘 살폈더라면 하는 후회와 죄책감에 햄 토리의 무덤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 내게 말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던 아들 녀석
"엄마, 자꾸 슬퍼 울면 햄토리도 슬퍼지겠죠?"
"그럼, 그럴 거야. "
애써 태연한 척 대답은 했지만, 정원을 돌아다니며 찾은 자잘한 돌을 햄토리 무덤 위에 얹고 호미로 그 옆의 흙을 끌어다 덮는 걸 지켜보며 사람이든 동물이든 정을 주고받다 헤어진다는 건 슬픔 이상의 아픔이라는 걸 햄스터의 주검 앞에서 진하게 느끼고 있었다. 뒤늦게 집에 돌아온 딸아이도 햄 토리의 주검을 듣고는 울음을 그치지 않아 그야말로 초상집이 따로 없었다. 갑자기 서버가 다운된 컴퓨터 마냥 꼼짝할 수 없어 먼 산과 먼 하늘만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엎친 데 덮친 격이라더니 서열 싸움이 며칠째 계속 이어지고 있는 진돗개인 백구와 나래의 치열한 싸움에 마음이 쉴 사이가 없어 결국 달리는 차 안에 전화벨이 울리는 상황을 만들고 말았다. 주말 잘 보내라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하지 못한 채 합천 가는 차 안이라고만 이야기하고 짧게 끊어버린 전화가 달리는 차장 사이로 비치는 풍경 속에 갇혀 못내 미안하고 아쉬웠지만 오랜만에 친정식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목적지인 합천에 가까워지자 지난밤까지 채 바퀴를 힘차게 굴리며 먹이를 잘도 받아먹던 햄스터의 갑작스러운 죽음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워질 수 있었다.
차가 산모롱이를 돌고 돌아도 쉬 끝나지 않는 꼬부랑길로 이어진 지릿재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어지럽다며 아우성이고 애써 참는 내 마음과 달리 입 안 가득 침이 고이는 걸 느끼며 이 길이 이곳을 거쳐야 하는 이들에게 얼마나 지루하게 느껴졌으면 이름마저 지릿재겠느냐며 괜스레 대상 없는 투정을 하는 날 위해 간이매점이 있고 화장실이 있어 지나치는 차량과 사람들이 쉬었다 가기도 하는 산 중턱 즈음에 차를 세웠다. 좀 전까지 어지럽다고 난리를 치던 딸아이는 남편과 함께 멀미 기미를 보이는 나를 놀리느라 멀미하기 전 증상에 대해 즉석에서 여섯 단계로 나누어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주거니 받거니 날 노리는 게 재미있어 죽겠다는 듯
"첫째 - 어지럽다.
둘째 - 속이 답답해 온다.
셋째 - 입안에 단침이 고인다.
넷째 - 가끔 딸꾹질 같은 반응을 보이는 소리가 나온다.
다섯째 - 신 침이 쉴 새 없이 고여 든다.
여섯째 -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면 드디어 폭발한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즉석에서 주고받는 소리치고는 그럴듯하다는 생각을 하며 차에서 내려 산들산들 불어오는 봄바람을 마시며 산등성이마다 붉게 핀 진달래와 연둣빛 아기 손톱만 한 어린싹들이 나 좀 한 번 바라봐 주라는 것처럼 다투어 얼굴 내민 모습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불편했던 속이 씻은 듯 편안해졌다.
우리 가족을 태운 차는 외동아들인 형부가 경남도청으로 발령 나는 것을 못내 아쉬워한 형부 아버님께서 부산으로 돈을 들고 아들 내외가 살 집을 사러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하다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도저히 멀리 떨어져서 살지 못하겠으니 땅을 사서 집을 지어 줄 테니 분가를 하라 하시며 마련해주신 그곳으로 향했다. 지은 지 오래되어 좀 편하게 살아야겠다며 아파트처럼 고친다고 리모델 공사가 한창인 그곳에 들렀다가 공사가 끝날 때까지 산다고 가까운 곳에 마련한 집으로 가니 친정어머니께서 혼자 텔레비전을 보며 반갑게 맞아주셨다. 설날이 한참 지났지만 찾아뵙지 못한 이유로 늦은 세배를 했다. 곧 뒤따라온다는 언니 부부를 뒤로 한 채 친정어머님을 모시고 모임 장소로 향했다. 도로를 나서니 금방 어둑해졌다. 모임 장소 가는 길목에 있는 ‘태극기 휘날리며’ 촬영 세트장에 들렀지만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막 문을 닫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뜨면 문을 연다는 소리에 아쉬운 마음을 누른 채 영화 촬영 세트장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인 합천 본댐을 향해 차는 달렸다. 합천호 본댐 수문 맞은편 언덕에 우리가 찾던 ‘합천호 관광농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내린 저녁 우리 가족이 그곳으로 간 이유는 1983년 ‘동반계’라는 이름으로 처음 모임을 결성한 이래 지금껏 만남을 계속 이어 오고 있는 친정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이 모임의 특징은 종손인 친정 할아버지 삼 형제가 결혼해서 낳은 자식 중 이씨 가문의 남자와 며느리는 가입조건에서 제외되며 딸과 백년손님인 사위와 모임에서 제외된 아들과 며느리 사이에서 낳은 딸이 성장해서 훗날 결혼을 하면 결혼과 동시에 부부가 자동으로 가입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모임을 만들게 된 계기는 친정에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을 때 함께 나누며 왕래도 하고 친하게 지내자는 의미와 서로의 배우자를 인생의 동반자로서 평생 아껴주고 사랑하자는 숨은 뜻도 있는데 일 년에 한 번 매년 사월 첫 주나 둘째 주중 그해 모임을 이끌 계주가 계원들의 상황을 파악해서 날짜와 모임장소를 정하는데 지금껏 모임을 위한 장소만 해도 제주도, 지리산, 경주, 통영, 부곡, 팔공산 등 곳곳을 여행 겸 두루 다녔다. 그렇게 해서 만든 동반계는 이 십여 년이 지난 2004년 현재 가장 어른인 고모에서부터 친정에서 영원한 막내인 나까지 합해서 13쌍의 부부가 계원이 되어 한 분도 먼저 세상을 떠났거나 살아 헤어진 사람 없이 1박 2일이라는 짧은 일정동안 서로 배려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을 한다. 계원들 모두 사는 곳과 직업이 다양하다 보니 약속장소에 도착하는 시간도 제각각 다르다. 우리가 도착한 저녁 7시 즈음엔 그날의 계주인 고모가 준비해 온 음식을 먹으면서 계원들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먼저 온 분들이 반갑게 맞아주셨다.
한때 다국적기업에 다니며 유창한 일어실력으로 일본을 오가던 첫째 형부 역시 둘째 형부와 마찬가지로 외동아들이며 고향도 친정과 그리 멀지 않은 합천읍 주변이라 누구네 집 자식 하면 다 아는 시절인 60년대 후반 경북대학교에 입학한 때부터 4년 동안 장학금을 받고 학교에 다녔으며 자격증 또한 몇 개나 딴 실력파였다. 그런 형부였지만 IMF 시기에 직급이 높은 사람 중 대부분 한국인을 우선 명예퇴직대상에 둔 회사의 방침에 밀려 자진 사퇴를 한 형부는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를 닮아 키가 크며 오십 대라는 나이가 믿기 어려울 정도로 여전히 날씬한 몸매를 유지하고 집안 꾸미기를 즐겨 상당한 수준에 이르는, 친정에서 맏이인 언니와 함께 경남 모 도시에서 제법 큰 서점 두 개를 운영하고 있다. 대학입시전문학원이 밀집된 지역에서 서점을 하는 관계로 늘 모임에 꼴찌를 면치 못하고 있는 큰언니 부부의 늦게 도착한다는 전화를 뒤로 한 채 저녁을 먹었다.
그날 음식의 메뉴는 농원에 미리 주문한 청둥오리와 닭백숙 등이었는데 먹어도 될까. 괜찮을 거야. 아니 괜찮아. 저마다 한마디씩 싱겁게 농처럼 던지면서 오래도록 앉아 잘도 먹는 모습과는 달리 소화할 겸 데이트하자는 남편을 따라 사람들 틈에서 살며시 빠져나왔다. Cafe "회력 발전소"에서 한 잔에 오천 원 하는 발효차인 산딸기를 마시면서 미식가인 남편은 농원의 특미인 한 마리에 칠십만 원 하는 통돼지 바비큐와 빙어, 은어 무침, 회, 튀김을 맛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는지 자꾸 나보고 먹고 싶은 것 있으면 한 번 맛을 보게 먹고 싶은 것 말하라고 했지만, 합천 토종돼지를 눌러서 만든 고기를 계주가 미리 많이 준비해 온 이유로 이미 고기 맛을 본 내 적은 위로는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눈앞에 있어도 먹을 수 없을 것 같아 결국 맛과 향이 괜찮은 발효차 산딸기를 한 병 사서 그곳을 나왔다. 어디 가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면 노래가 빠지지 않는다고 했던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사람들이 모인 곳으로 가니 관광메들리에 디스코메들리를 서로 주거니 받거니 노래잔치가 벌어졌다. 친정식구들 대부분이 노래실력은 썩 괜찮은 편에 속해 여기저기 작은 노래자랑에 나가서 입상한 이도 몇 명 있거니와 이 십여 년 전, 대학가요제에 나갔던 오빠는 노래라면 지금도 잘한다는 부러움을 사고 있다.
친정엄마에게 외동아들인 오빠는 정신적인 우상과도 같은 존재지만 명문고인 경북고등학교 시절 아버지를 여읜 슬픔에 성적이 곤두박질할 때와 통기타를 치며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를 밤이 새도록 불러대던 아들을 바라보며 태몽이 용꿈이라 가운데 이름을 용(龍)자로 지어 준 아들이 언젠가는 대성하리라 믿으며 방황하는 아들을 지켜보아야 하는 시절도 있었다. 젊은 날 모 그룹에 입사한 오빠의 사진과 그 회사를 지원하게 된 동기, 앞으로의 각오 등이 실린 사보를 읽고 또 읽으며 내 자식이지만 참 잘생겼다 하시며 죽어도 이제 여한이 없다고 했을 정도니. 아무튼, 엄마의 바람대로 잘살던 오빠는 몇 년 뒤 퇴사를 하고 창업을 했는데 일 년 만에 대단한 흑자를 올리는 행운을 맛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동업 포기조건으로 월급 외에 특별비 명목으로 보통 사람의 2~3년 월급에 해당하는 현금을 동업 파트너였던 사람에게서 받고 나오고 마흔 중반의 나이에 이름만 대면 다 아는 그룹에 취직했으니 인복과 능력 모두를 갖춘 행운의 사나이가 틀림없는 것 같다. 그것도 IMF 직전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말이다.
늦은 시간 큰언니 부부와 동반계 가입대상은 아니나 부모님을 모시고 만나는 자리인 만큼 종손인 오빠 내외도 왔다. 바쁠 텐데 와 준 성의가 너무도 고맙다며 모두 잘 왔다고 반갑게 맞아주셨다. 노래와 술판이 벌어지고 있는 깊은 밤, 술을 별로 즐기지 않는 오빠에게 다음에는 이사로 승진을 해야 할 것 아니냐고 말을 붙이며 능력도 중요하지만, 직급이 높아지면 질수록 술 마시는 기술도 배워야 살아남기가 쉽다며 자꾸만 마시라고 부추겼다.
그날 셋째 형부가 참석하지 못했다. 언니 말로는 시댁행사에 참석해야 하기에 오지 못했다고 했지만 늦은 수업을 하고 홀로 집을 나서려니 망설임이 더 컸을 거라는 생각이 앞서 마음 한구석 짠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성균관대학교를 나와 입시학원 강사로 잘나가던 시절이 있었고 또 한때는 입시학원 원장을 지내기도 했지만, 어찌어찌 흐르는 세월 속에 지금은 학원 강사로 있다. 어린 시절 아이큐 140을 오르내리는 언니를 보며 엄마는 언니가 혹여 이상한 행동을 하면 머리가 아주 좋아도 탈이라며 은근히 걱정했지만, 보지 않고도 데려간다는 셋째 딸은 누구보다도 열심히 자신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끌기 위해서 노력 중이다. 딸 넷 모두를 다른 집안의 맏며느리로 시집보낸 친정엄마는 외동아들인 오빠 내외와 시집가서 자기 앞가림하며 사는 딸자식들이 잘되는 것 외 아무 소원도 없다며 밤새 시끄럽게 노래하며 이야기하는 그 속에서도 단잠을 주무셨다.
전날 문을 닫아 보지 못했던 ‘태극기 휘날리며’ 세트장으로 아침밥 먹기 전에 다녀오자는 남편의 부추김에 화장은 흉내만 내고 마라톤 대회가 있어 오전 9시부터 교통이 통제된다는 벚꽃이 만개 한 그 길을 따라 우리가 묵은 농원에서 2km 떨어진 영화 촬영 세트장으로 갔다. 이른 아침이었지만 몇몇 관광객들이 벌써 구경을 하고 있었고 곧 촬영에 들어갈 영화 양동근 주연의 ‘바람의 파이터’ 세트건립도 한창이었다. 여기저기 둘러보던 아이들은 실망한 듯 “영화 속 모습은 멋지던데 이건 아니잖아.” 옆에서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던 남편은 배경이 전쟁터이니 이럴 수밖에 없다며 아이들의 실망을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었다.
농원을 마주 보고 있는 합천호 본댐 구경을 마친 뒤 매년 오월이면 철쭉축제행사가 있다는 영남의 소금강 황매산(1,108m) 군립공원 내 자리 잡은 모산재(767m) 아래 멈추어 섰다. 삼라만상형의 기암괴석으로 형성된 아름다운 바위산의 절경과 사월 휴일 한낮을 무지개터, 황매산성 순결바위, 국사당을 잇는 산행코스로 등산을 가는 많은 사람을 바라보니 머리와 등 뒤로 쏟아지는 햇빛처럼 참 좋다는 말이 절로 쏟아져 나왔다. 수 만평에 걸친 황매산 고산 철쭉군락이 황매 평정을 뒤덮어 고산 화원을 이루고 있다는 그곳에 올 5월 2일 철쭉축제가 열리면 놀러 오자는 몇몇 사람들의 말에 정말 그러고 싶다 대답하며 통일신라시대의 고찰인 영암사지를 둘러보았다.
"합천 영암사지(陜川 靈巖寺址)는 사적 131호로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에 있다. 1984년 절터 일부의 발굴조사를 통해, 불상을 모셨던 금당(金堂)과 서금당(西金堂), 회랑(回廊)과 부속된 건물터 등이 확인되었다. 원래의 절에는 탑, 석등, 금당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었고 금당의 동서에 각각 1기의 비석이 있었던 것과 금당이 세 차례에 걸쳐 개축되었음이 확인되었다. 통일신라시대 말부터 고려시대에 걸치는 각종의 기와와 함께 8세기경의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이 출토되어 이 절의 창건연대를 짐작하는 데 좋은 단서가 되고 있다. 영암사라는 이름은 입으로 전해지는 것일 뿐 정확한 기록에서 확인된 것은 아니어서 절의 정확한 이름과 내력은 알 수 없다." 라는 안내표지판 앞에서 혹여 여행기록을 남길지도 모르는 나를 위해서 남편이 디지털카메라로 찍어주었다.
아주 먼 옛날 절터였다는 흔적이 있는 돌과 탑에도 이끼가 끼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지만, 봄볕을 환하게 받아 함박웃음을 터트린 야생화를 보며 철부지 아이처럼 참 예쁘다며 연신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던 남편이 야생화와 주변 석등을 관찰하던 아이들을 찍어 준 뒤 다짜고짜 활짝 핀 동백꽃 앞에 서란다. 전날 집에서 출발하기 전 산속이라 추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소 두꺼운 옷을 입은 탓에 햇살 좋은 그 시각 내 옷차림이 안 어울린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을까 말까? 잠시 망설였지만 내가 꽃인 양 꽃 앞에 서고 말았다.
절터 입구에 있는 600년 된 느티나무를 뒤로하고 가회면에 있는 모 식당이 음식 잘한다는 소리에 차 방향을 그쪽으로 잡았는데 아무리 달려도 식당이 보이질 않자 일행 중 누군가 길을 잘못 들은 것 같다며 이대로 삼천포로 빠질까 한다. 어찌어찌 하다 들른 식당, 주문한 메기탕과 메기찜의 맛이 괜찮을까 우려했던 것과 달리 맛있었다. 모두 맛있게 먹고 다음 해 만날 것을 약속하고 자신들만의 보금자리를 찾아 서울, 대구, 부산, 창원 등지로 하나 둘 떠났다.
탤런트 이순재 씨의 젊은 시절 모습을 참 많이 닮은 삼촌은 초등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임 했는데 다음날이 한식이라 산소에 성묘해야 한다며 숙모와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인 고모를 태우고 합천 고향 집으로 향했다. 일이 있어 참석 못한 고모부 때문인지 왠지 흥이 나 보이지 않는 고모는 작년에 환갑을 지냈지만, 취미로 시작한 한국무용 때문인지 선이 또렷하게 생긴 외모 때문인지는 알 수 없으나 또래보다 고운 자태를 유지하고 있고 생각 또한 젊어 사십 대 초반인 동갑내기 우리 부부와도 말이 잘 통하는 분이라 같은 도시에 사는 고모가 우리 집에 온다는 전화가 오면 우리 식구들은 다들 좋아한다.
삼촌과 오빠가 운전하는 차량의 꼬리를 따라나서고 싶었지만 설 연휴에 시어머니 산소에 다녀오지 못했기에 운전하는 남편에게 친정에 들렀다 가자는 말조차 끝내 못한 채 대구를 향해 달렸다. 집에 도착한 아들 녀석은 이모들이 선물한 옷이며 학용품 등을 이리 살피고 저리 살피며 엄마는 막내라서 참 좋다며 뭐가 그리 좋은지 연신 싱글벙글한다. 아들 녀석의 밝은 얼굴처럼 가족의 소중함을 더한층 느낄 수 있어서 감사한 날, 마음으로 쓴 내 삶의 노트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었다. 오늘도 가족과 함께였으므로 행복했다고.
2004년 04월 - 喜也 李姬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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