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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향기

대답 없는 이름에게 말을 걸다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9. 27.

1923년 12월 8일 토요일(음력 11월 1일) 경남 합천 출생
2004년 9월 12일 일요일(음력 7월 28일)
한 박사라 불리던 내 어머니가 숨을 거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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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불러도 대답 없는 어머니...
이 세상에 어머니 당신이 없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아서 꿈이라고 생각을 해봐도 가만히 엄마하고 부르면 왈칵 눈물이 쏟고 가슴이 아픈걸 보면 어머니 당신은 제가 알지 못하는 먼 나라로 떠나신 게 분명 한가 봅니다.

 

아, 어머니!...
어머니가 이 세상을 떠난 지도 벌써 만 열닷새가 지났건만 제게 부쳐진 이름에 충실한 나날들을 살다보니 늦은 오늘에서야 이렇게 불러도 대답 없는 어머니 당신만을 온전히 그리워하며 두서없는 편지를 쓰게 되었음을 용서하십시오.

 

어머니!...
당신은 보지 않아도 듣지 않아도 말하지 않아도 그동안 막내딸이 어떤 시간을 보내고 살았는지 헤아릴 수 있겠지요. 어머니, 많이 아팠습니다. 많이 그리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속내를 어느 누구에게도 드러낼 수도 없었습니다. 삼우제 끝내고 돌아와서도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랠 겨를도 없이 칠순을 맞은 시아버지 생신을 위해 음식을 준비해야했고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의 가을 운동회를 앞두고 회장, 부회장 어머니들이 만나는 자리에 참석해야했던 시간들... 어디 그뿐이었는지요. 입맛이 까다롭기가 여간 아닌 가족들의 식사를 위해 끼니때마다 오늘은 어떤 국과 찌개를 함께 올려야할지를 고민하며 준비해야했던 시간들...

 

어머니!...
맏며느리로서 살아간다는 것과 어른으로 살아간다는 건 고통을 드러내지 않고 늘 평상의 부드러운 마음을 유지해야 한다는 걸 어머니 당신으로부터 보고 듣고 느껴 마음의 각오는 늘 하고 살아가지만 그래도 제게는 어려운 숙제처럼 매번 어렵기만 합니다.

 

어머니!...
오늘은 추석제수용품과 음식들을 준비하러 할인점에 다녀왔습니다. 저녁식사에는 갖은 양념에 버섯과 단물이 많은 배와 양파를 갈아 넣은 돼지갈비찜을 했는데 식구들 모두 맛있다고 반응이 좋았습니다.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는 가족들을 보면서 산 자와 죽은 자의 경계를 생각했습니다. 어머니는 그 먼 나라로 떠나셨는데 전 살아있어 산 자를 위한 음식을 하고 산 자를 위해 웃어야했습니다. 그게 살아가는 순리라는 걸 알지만 그러한 사실이 저를 못내 슬프게 합니다.

 

어머니!...
가족들이 모두 잠든 깊은 밤, 제 마음은 어머니 49제를 모신 합천 연호사(烟湖寺)에 머물러 있습니다. 절 바로 앞에 강물이 흐르는 곳으로는 우리나라 유일한 사찰이기도 한 그곳은 절 바로 옆에는 누각 처마의 빗물이 황강으로 바로 떨어진다는 것으로 유명한 고려시대에 창건한 함벽루(涵碧褸)가 있어 더 아름다운 곳이지만 제게 있어서는 어릴 적 어머니랑 모래찜질을 간 추억이 깃 든 장소로 가슴에 새겨진지 오래라 지금 이 순간도 눈만 감으면 그 시절 어머니와 어린 나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에 휩싸이곤 합니다. 아니, 아닙니다. 그건 착각이 아닙니다. 제 바램입니다. 단 한번만이라도 그 아름답고 순수했던 시절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하는... 

 

함벽루(涵碧褸) 난간이나 누마루에 앉으면 배를 탄 느낌이라 조선시대 수많은 학자나 시인, 묵객들이 만나 즐겨 시를 읊던 곳이라는 그곳에는 누각 뒷면 큰바위에 우암 송시열이 쓴 함벽루(涵碧褸)란 세 글자가 크게 새겨져 있고 누각 안에는 "이름에 얽매이지 않게 되니 가고 머무름에 구애되지 않는다"고 노래한 퇴계 이황과 "뜬구름을 배우고자 하였으나, 바람이 흩어 버린다"고 아쉬워한 남명 조식의 시가 드물게도 마주보고 있는 그 아름다운 곳에서 어느 누구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머니 당신을 목 놓아 부르고 싶었습니다.

 

아, 어머니!...
바람보다 더 먼저 길을 내는 세월을 따라 그 먼 나라로 가신 그곳은 따스한 지요. 올 여름, 운동하러 가는 길목에서 만난 백일홍을 보면서 자꾸만 상여가 떠올라 참으로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어머니 당신이 이 가을 백일홍 지는 날에 가신단 말 한마디 아니하시고 떠나실 줄은 정말이지 몰랐습니다.

 

어머니!...
그렇게 기별 없이 떠나신 당신을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서툴지만 부처님 앞에서 절을 올렸습니다. 한때 수녀가 되어 나 자신보다 이웃을 위해 살겠노라 다짐했던 시절이 있어 어머니 가슴을 아프게 했던 제가 살다보니 지금은 어떤 종교에도 귀속되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 어떤 종교도 부모보다 우선일 수 없다는 생각으로 오직 어머니 한 분을 위해 마음을 다해 부처님 앞에 절을 올렸습니다. 부디, 어머니 가시는 그곳이 따스한 곳이기를 염원하면서...

 

어머니!...
부르면 선뜻 대답해 줄 어머니가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행복인지 얼마나 큰 기쁨인지 어머니 당신이 살아 계실 적엔 그 깊이를 미처 깨닫지 못했습니다. 참으로 어리석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죽음이라는 정해진 사형선고를 받고 태어난다는 것을 까맣게 잊고 살았습니다. 세상 사람들 하나 둘 낙엽처럼 땅위로 스러져 갈 때 날 낳아준 내 어머니만은 언제나 내 곁에 남아 엄마하고 부르면 "누고? 숙이가..." 재차 확인하듯 물으시는 대답을 내 살아있는 동안 언제까지나 한결같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고 보고 싶어 찾아가면 언제나 볼 수 있을 줄만 알았습니다. 이 얼마나 철없는 오만인지요.


어머니!...
당신만 생각하면 왜 이다지 미안하고 또 미안한지요. 많고 많은 말 중에 이 세상에 어머니 딸로 태어나게 해주셔서 고맙다는 말도 하고 싶고 어머니 당신을 진실로 사랑했다는 말도 하고 싶은데 왜 어머니 당신만 부르면 미안하고 또 미안해서 끝끝내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해야 하는지요.


자식의 성장을 위해 평생을 디딤돌로 사셨던 어머니!...
자식가슴에 대못을 박지 않게 하려고 남아있는 힘을 다해 아들내외를 어머니 당신 품으로 달려오게 만드셨던 그 날 비가 내렸다지요. 비도 내리고 오빠가 출장 다녀온 후라 깊은 밤 운전하고 가는 게 마음에 걸린 올케는 다음날 어머니 뵈러 가자고 했지만 다른 날과 달리 어머니 당신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 오빠는 깊은 밤 빗속을 달려 합천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지요. 오빠내외가 고향집에 도착한 시간이 밤 열두시가 넘은 시간이었다는데 그 시간 외아들이 오기만을 기다리며 꼿꼿하게 방안에 앉아 계셨던 어머니는 어떤 심정이었나요?... 어머니의 눈물과 한숨과 웃음이 배여 있는 사 칸짜리 기와집을 뒤로하고 그 새벽에 순순히 아들 내외를 따라 나선 그 길 무슨 생각을 하셨나요?...


세상 어느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지 않는 부모가 있으랴마는 마지막 그 순간까지 오 남매 전화번호를 품에 지니셨던 어머니, 그 마음 다 헤아릴 수는 없어도 잊지 않겠습니다. 당신 자신의 수의와 하나뿐인 외아들 상복까지 손수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지어놓고 삐뚤삐뚤한 당신의 글씨로 일일이 이건 어디에다 쓰일 것이라는 글을 남기신 어머니 당신을 보면서 종부는 하늘에서 낸다는 말을 이해 할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 존경합니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이 말을 살아생전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세상을 어느 누구보다 올곧게 살다 아름답게 마무리하고 가신 당신이 제어머니였다는 사실이 이렇게 가슴 저리게 고마운 일인 줄을 때늦은 지금에서야 사무치게 느끼지만 지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어머니 당신이 제 어머니였다는 사실과 어머니는 가고 없지만 우리 오 남매에게 있어 살아생전 하나의 둥근 원으로 살아 호흡이 되고 빛이 되고 웃음이 되어주었음도 기억하겠습니다. 그렇게 어머니 당신은 자식들  삶에 있어서 둥근 세상이었고 사랑이었고 힘이었습니다.

 

아, 어머니!...
당신을 사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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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9월 27일 - 막내딸 숙이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