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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향기

안과 밖 구별 없이 만나 서로 보듬을 수 있게 - 이희숙

by 시인촌 2004. 8. 15.
                                   
우리 집 제일 위층에 위치한 창고 문

생각나?
크고 작은 세 개의 여행용가방과 크리스마스트리랑 장식품, 
그리고 아이스박스, 기타, 테니스라켓, 장구 등등이 들어있던 창고에 
어떤 문을 달아주어야 좋을지 한참이나 고민했던...
말이 창고지 겨울이면 난방도 되는 그 공간을 
여느 집 창고처럼 쇠나 철로 된 문은 결코 달아주고 싶지 않아 했던 내 마음...
문대신 큰 그림을 걸어볼까 이 궁리 저 궁리 참 많은 생각 떠올려 보았지만 
생각 끝에 통풍이 잘되는 나무로 짠 문을 달아주기로 결정하고 나서 
지금 보이는 저 문을 목수한테 부탁해서 짜 맞춘 거...
보기에도 밉지 않고 창고 안 물건도 숨을 쉴 수 있으니 정말 잘 선택한 것 같지.

몇 달 전, 
창고 안에 들어 있던 물건 중 장구는 거실로 내려놓고 
큰 상 하나는 내가 그림 그릴 때 사용하려고 사색의 방으로 옮겨놓았지만
아직도 주인의 따스한 손길을 기다리는 물건들이 생각보다 참 많더라.
당신을 기다리는 기타, 나를 기다리는 테니스라켓, 
겨울이 오면 제일 먼저 아이들이 찾아와 주기를 기다리는 
크리스마스트리와 장식품 등등...
어디 그 뿐이겠어. 
다가 올 계절이 멀면 멀수록 깊숙한 곳에 들어있는 물건들도 
하루빨리 시간이 흘러 자신이 기쁜 용도로 사용 될 수 있기를 바라고 있겠지. 

오늘 저 문을 열고 창고 정리를 했어. 
크리스마스 트리 옆에 얌전히 서 있는 두 개의 난로를 보니 
겨울도 멀지 않았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더라.
35도를 오르내리는 여름날씨에 겨울을 떠올리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대.
뭐랄까? 
설원으로 초대된 느낌이라고나 할까?
창고 속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각각의 물건을 어루만지면서 
잠깐동안이었지만 잊고 있었던 지난 추억들을 떠올려보는 시간을 가졌어.
마치 사진첩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기분이었지.
각각의 이름에 부쳐진 사연을 기억해 내는 그 기분이 말이야. 
문득 그런 생각을 했어. 
오늘 내가 열어 젖힌 문처럼 사람 마음도 
안과 밖 구별 없이 만나 서로 보듬을 수 있게 활짝 열어주어야 한다는 생각...
결국 사람이나 사물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어.
관심을 주면 관심을 받은 만큼 기쁨을 되돌려준다는 거...

지금 이 순간, 
누구보다도 나 부자가 된 기분이야.
이 기분이면 뭐든지 다 품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럴 때 나 뭘 해야지.
아, 그렇지.
이 느낌을 표현해야지.
고마워. 
정말 고마워.
느낄 수 있게 해주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