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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향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에게 띄우는 특별한 편지

by 시인촌 2004. 7. 9.

며칠 전, 엄마인 내가 아빠와 너희들에게 질문을 한 내용을 기억하고 있지.
내게 가장 잘 어울리는 이름이 무엇이냐 라고 물었던...
아빠와 신애는 주저하지 않고 엄마의 자리에 있을 때 내가 가장 빛나 보인다고 했고
재석이는 아내의 자리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지만
엄마의 자리로 있을 때가 제일 행복해 보인다고 대답했었지.
그 말을 들었을 때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고 행복했어.  
엄마의 자리가 잘 어울린다는 말을 한 너희들이 지금껏 보여준 많은 감동들이
다시금 새록새록 돋아나 엄마로 하여금 행복한 사람이란 걸 깊이 느끼게 해 주었고

무엇보다도 아내인 내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라는 말로 내 마음을 들뜨게 한
너희들의 자랑스러운 아빠로 인해...

 
페리요정, 언젠가 네가 한 말 기억나니?
엄마는 참 이상하다는...
뒷모습은 이십대, 앞모습은 삼십대, 진짜 나이는 사십대 초반이라고 한 말...
그래. 그렇게 보였을 테니 그렇게 느끼는 건 당연한 거겠지.
사실 엄마는 그만큼 내 나이를 뛰어넘어 살고 싶은 지도 모르겠어.
아니, 분명 그럴 거야.
때와 장소에 따라 아름답게 변신할 줄 아는 여자,
그래서 사랑 받는 여자로 살고 싶고 기억 되고 싶어. 

 

그 말을 할 때 네 표정을 보니까 막 자라나는 풋과일처럼

갓 피어나는 꽃봉오리처럼 참 상큼하더라.
엄마인 나를 친구처럼 때로는 엄한 선생님처럼 대접 할 줄 아는

너의 말을 듣고 참 많이 컸다는 생각을 했어.
고맙다.
어느 듯 자라 말이 통하는 나이가 된 지금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자라주어서...

 

페리요정이 이 세상에 태어나던 날,
그보다 훨씬 더 이전, 한 남자를 사랑해서 결혼을 생각하게 된 그날부터
엄마는 내 자신에게 다짐을 한 게 있었지.
한 남자에게 있어서 아내로서 미래가 될 것이며
결혼 후 태어날 아이들에게 있어서 미래가 될 것이라고...
그러한 생각은 아빠와 엄마 둘 다 같았기에 지금까지
가족이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행복열차를 탈 수 있었는지도 몰라.

 
가끔 해질녘 옥상으로 올라가 생각에 잠기곤 해.
내가 가진 많은 것의 이름 혹은 자리는
어떤 모습일 때 가장 아름다울까 라는...
모든 사물은 각자의 이름과 자리에 걸 맞는 모습이 있지.
불혹을 넘긴 엄마에게 주어진 이름 역시 참으로 다양한,
본래의 나 그리고 여자, 아내, 엄마, 며느리, 딸, 친구
그리고 덤으로 주어진 글 쓰는 사람 등등...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가꾸어 나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해.
이러한 엄마의 생각은 지나온 시간에도 그랬고
지금 이 순간, 더 나아가 시간이 많이 흐른 먼 훗날에도 여전히 변치 않는 진리가 되어
내게 주어진 자리를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지키며 가꾸어 나갈 것을
이 엄마는 믿고 또 다짐하곤 해.

 
학교든 학원이든 놀이처럼 신나고 즐거워야 한다는 게
평소 아빠, 엄마의 생각이기에 너희들은 특히 페리요정은
다른 많은 아이들이 경험하지 못한 연기학원이나 무용학원을 다닐 수 있었지.
만 34개월인 페리요정의 손을 잡고 만 4개월이 된 동생을 업고
연극영화예술원을 찾았을 때도 엄마의 꿈은 오직 하나였어.
이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 할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무엇보다도 이 세상은 즐거운 일이 무진장 많은 곳이라는,
그 많은 즐거움을 들려주고 보여주고 느끼게 해주어 말하게 하고 싶었어.

 
연기자로 키우기 위해서 연기학원을 찾은 게 아니었던
무용인으로 키우기 위해서 무용학원을 찾은 게 아니었던 엄마의 생각이
지금 학교에서 아나운서로 활동하고 있는 페리요정을 보면서 알게 모르게
놀이처럼 경험한 것들이 너를 당당하게 만드는데 한 몫 하지 않았나 싶어.
아들에게 시킨 많은 것들도 마찬가지고...

 

말 한마디에서부터 듣는 음악, 보는 풍경하나까지
품격을 높여주고 싶어 하는 엄마, 아빠의 노력이 때때로 너희들을 힘들게 해
까다로운 엄마로 칭찬에 인색한 아빠로 느껴지기도 하겠지만
너희들에게 디딤돌이 되고 싶어 하는
부모의 정성이고 사랑이라고 생각을 해주면 좋겠어.

 
지금처럼 너희들이 학교 준거집단이나 다른 외부에서 하는 체험활동을
자주 경험하지 않아도 될 나이였을 때에는
한 달에 평균 두 번은 지도를 펼쳐 놓고
어디로 여행을 갈까하고 즐거운 고민에 신이 났었지.
아빠가 사업을 하는 관계로 직장을 다니는 다른 사람들보다
시간을 자유롭게 관리할 수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아직은 어린 너희들과 다함께 즐거울 수 있는 일을 찾다보니
놀이처럼 문화체험을 할 수 있는 여행만큼 좋은 것도 없었어.
덕분에 우리 가족은 추억도 많고 사진도 참 많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한 지난 시간은 엄마에게 있어서 늘 감동이었어.
이런 내 마음, 지금 이 글을 쓰는 이 순간에도 그렇게 느끼고 있고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도 역시 변함없을 거라는 걸 믿어.
편안한 웃음을 주는 사람, 행복한 감동을 주는 사람...
가족만큼 귀한 선물이 이 세상에 어디 있을까 하는 생각 종종 하곤 해.


 아, 참... 또 하고 싶은 칭찬의 말을 놓쳐버렸네.
페리요정, 고맙다.
며칠 전에 친 대구지역 총괄 기말고사 130문제 중 도덕 한 문제만 틀려
약속대로 전교일등 하면 핸드폰 사준다는 약속을
아빠, 엄마가 아주 기쁜 마음으로 지킬 수 있게 해주어서.  

엄마가 시험 당일 아침에도 그랬지.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자기자신에게 용기를 북돋는 체면을 걸라고.
나는 할 수 있어. 나는...

 

많고 많은 사람들 중에 그들이 하고 있는 뭔가가 잘 되고 있다면
그들만의 특별한 이유가 분명히 있다는 말, 엄마는 늘 마음에 새기고 있어.
나는 안 돼, 할 수 없어. 힘들어 라고 말하는 사람은
부정적인 말이 입에서 나오는 그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 중 소중한 하나를 잃어버린 것과 같아.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진다는 말, 이 말을 엄마는 달리 표현하고 싶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은
살아있는 동안 그 무엇도 두렵지 않고 즐거울 수 있다는 말로...

 

그러고 보니 내 사랑스런 아들이 자기한테는 칭찬을 해주지 않는다고 서운해 하겠는 걸.

아들, 미안하다.
이번에는 일등은 여자친구에게 내주고 이등이라는 결과를 안았지만
엄마는 네가 참 자랑스럽단다.
평소에는 애교 넘치는 아들이다가도
엄마가 피곤해하거나 혹여 아픈 기색이라도 들키는 날이면
누나보다 훨씬 더 깊은 마음으로 엄마를 이해해주고
시키지도 않는 집안일까지 척척 도와주어서...

 
아들, 너 그거 아니?
네가 엄마에게 하는 질문은 평소 네가 잘하고 관심 있어 하는 분야인
수학이나 과학에 관한 질문을 많이 한다는 걸.
어제는 뭘 질문했더라.
아, 그렇지.
인체에 관한 것과 생명에 관한 거였지.
어느 날은 네가 하는 질문에 엄마는 깜짝 깜짝 놀라곤 한다.
언제 이렇게 다양한 정보와 지식을 습득했을까 하고 말이지.
네가 질문을 많이 하면 할수록 엄마에게도 공부가 되니 무척 즐거워.

 
아들, 지금껏 해왔듯이 우리 즐겁게 생활하자.
놀이처럼 즐거운 집, 학교, 학원...
끝으로 부탁이 있는데 들어주었으면 좋겠어.
누나랑 토론이상의 싸움으로 번지는 입씨름은 조금 줄여주었으면 해.
엄마 부탁 들어줄 거지?
뭐, 들어준다고...
고마워.

 
아들, 딸... 사랑한다.
소리 내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자기 자리를 잘 지키고 가꾸어 나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는 엄마로부터.

 

 


2004년 07월 09일 - 喜也 李姬淑